예술가를 다룬 영화에서는 으레 영감에 사로잡힌 예술가가 단숨에 걸작을 완성하는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그런 예술가도 있었겠지만, 술만 먹었다 하면 읊어대는 대로 시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 이태백도 실을퇴고(推敲)를 거듭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어떻게 그렸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하는 테마전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상설전시 미술관에서 31일 개막해 10월28일까지 열리는 이 소규모 기획전에는 전남 영암의 전주 최씨 문중 소장 `최덕지 초상 초본`(보물 594호)을 비롯한 관련 유물 35점이 자리를 함께 한다.

전시 키워드인 초본(草本)이란 글자 그대로 밑그림을 말한다.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물을 짓고 완성하듯이 초상화 또한 같은 순서를 밟았다.

초본이라 해서 대강 그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은 완성본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얼굴 묘사가 상세하기 때문이다. 초본은 기름종이인 유지(油紙)에 먼저 버드나무를 태운 숯인 유탄(柳炭)으로 대략 인물 윤곽을 잡은 뒤에 먹선을 올리고, 화면 뒤에서 칠하는 소위 배채(背彩) 기법을 사용했다. 배채는 고려불화에서도 발견되는 기법으로 뒤에 칠한 색채가 앞에서는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이런 배채 기법을 비단에 사용하면 올 사이로 색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나 기름을 먹여 반투명하게 만든 유지를 사용할 때는 다른 맛이 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기름 종이에 제작된 초본은 비단에 그 윤곽을 옮겨 완성품이 된다. 따라서 초본은 일종의 샘플작인 셈이다.

초상화를 제작하려는 주문자들은 대체로 초본을 보고서 수정과 보완을 요구했던것이다.

이 자리에는 최덕지 초상 초본 외에도 국립박물관 소장 `임희수가 그린 초상화 초본`, `채제공 초상 초본과 정본`(보물 제1477호), 조선후기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1744년) 중 이의현(李宜顯) 초상 등이 출품된다.

나아가 개인 소장품인 조선시대 무관 이성유의 관복본과 군복본 초상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중 관복본(冠服本.1782년)에는 `함춘군 이성유 70세상`(咸春君李聖兪七十歲像)이라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글씨가 있으며, 군복본(軍服本.1782년)에서 주인공은 공작 깃털이 달린 전립을 쓰고 짙은 청회색 동달이에 자줏빛 전복을 입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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