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교양학부)

제 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아 다시 주목받게 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amp;amp;amp;amp;lt;밀양&amp;amp;amp;amp;gt;은 이청준 소설 &amp;amp;amp;amp;lt;벌레이야기&amp;amp;amp;amp;gt;를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작은 실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유괴범에게 아들을 살해당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녀는 신앙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식의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지만, 막상 살인범으로부터 이미 신(神)의 용서를 받았다는 말을 듣자 좌절하여 결국 자살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그녀보다 먼저 살인범을 용서할 권리가 있으며, 설사 신이라도 그녀로부터 용서의 권리를 빼앗아도 되는 것인가? 작가는 &amp;amp;amp;amp;quot;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amp;amp;amp;amp;quot;라고 물으며 우주적 존재인 인간의 편에서 그 존엄성을 박탈당한 여인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도 원작처럼 여인의 상실감을 충분히 반영하지만, 신애(주인공)의 자살시도가 죽음으로 끝나게 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밀양(은밀한 햇살)`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비참한 인간의 모습 뒤에 은총의 비밀을 숨겨둠으로써 용서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신애가 광기에 이르는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신이 그녀보다 먼저 범인을 용서한 것이 과연 그녀를 인간적인 존엄성을 빼앗긴 벌레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살인범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권능이 될 수 있을까?

신애가 원한 것은 살인자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그를 용서하였다는 `증거`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빼앗긴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용서할 수 있는 권리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녀가 피해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가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그에게 용서를 `베풀`도록 자기본위로 스스로에게 부여한 권리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라고해서 가해자보다 우위에서 그를 좌우할 권리는 없다. 죄를 사해주는 것은 한 인간이 동등한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인간에 베푸는 은총이다.

은총은 햇살과 같아서 선한 자나 악한 자 모두에게 고루 비춘다. 영화는 존엄성이 박탈당한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신 앞에 동등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이 그녀보다 먼저 범인을 용서한다고 해서 그녀의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신 앞에서는 상처받은 자나 죄지은 자도 다 같이 은총이 필요한 존재다.

그렇다면 신애에게 주어진 은총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지는 관심과 위로, 나눔과 동행이다. 그 중 가장 따뜻한 손길은 카센터 김 사장의 한결같은 헌신이다.

비록 신애가 인식하지 못해도, 은총은 늘 그녀 곁을 지켜주는 김 사장을 통해 항상 따사로이 그녀를 비추고 있다. 여기에 이 영화의 은밀한 비밀이 있다.

영화는 신애의 불행과 고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이 고통을 어루만지는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과 은총을 표현한다. 신애의 불행은 신의 사랑(神愛)을 드러내기 위한 예술적 형상의 장치일 수 있다.

영화는 비참한 벌레와 같은 인간의 모습 대신 제목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늘 우리 곁에 있는 은총, 누구에게나 두루 따사로운 은밀한 햇살을 그린다. 우리의 삶 속에도 숨겨진 햇살이 있다.



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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