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웃찾사-쑥대머리' 코너 인기몰이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 옥중에서 부르는 '쑥대머리'가 일요일 저녁마다 방송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그런데 국악 프로그램에서가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다. 그러다보니 사실은 '쑥대머리' 중 오로지 "쑥대머리~"라는 부분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SBS '웃찾사-쑥대머리'코너가 6월 말 첫선을 보인 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와 인기 코너로 잇따라 오르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목에 칼을 쓰고 머리를 풀어헤친 춘향이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한쪽 머리는 바싹 밀어버리고 반대쪽 머리는 길게 길러 넘긴, 희한한 헤어스타일의 남자 둘이 주인공이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의 특징은 고개를 확 꺾을 경우 긴 머리카락이 대책 없이 흘러내리면서 지저분한 스타일이 된다는 것. 일명 '21세기형 쑥대머리'가 되는데, 판소리 "쑥대머리~"는 바로 이 부분에서 흘러나온다.

코너를 꾸려나가는 4인방은 고장환, 김경욱, 심재욱, 정주리. 고장환과 김경욱이 '쑥대머리'로 출연하고 심재욱과 정주리가 이들이 서빙하는 가게의 손님으로 등장한다.

이 코너의 콘셉트는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까발리는 것. 겉을 보면 번드르르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실체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김경욱과 고장환은 "한마디로 럭셔리한 사기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싸구려 내면을 꼬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나 의상실, 고깃집 등을 무대로 종업원들이 사기를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스토랑을 찾아오려는 외국인에게 전화로 길 안내를 해달라는 손님의 부탁에 종업원이 영어로 자신 있게 통화를 하는 듯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영어를 못하는 일본인이라는 식. 또 와인으로 숙성시킨 고기를 내세운 고깃집에서 1인분에 30만 원을 청구해 손님이 항의했더니 "고기를 숙성시킨 와인이 30년산이라 그렇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온다.

정주리와 심재욱은 "매회 우리는 쑥대머리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피해자로 나오지만 사실은 그들의 사기 행각을 밝혀내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개그와 판소리 '쑥대머리'는 무슨 상관일까. 이들은 "사실 상관은 없죠. 하하하"라고 대답하며 일제히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꾼들의 무식함이 들통나거나 속내를 들키는 콘셉트의 개그를 준비하면서 음악을 뭘로 할까 고민했는데 처음부터 판소리 중에서 고르려고 했어요. 개그에도 음악이 아주 중요한데 그동안 민요나 판소리를 사용한 개그가 없었잖아요. 그러다가 '쑥대머리'를 들었는데 "쑥대머리~" 대목을 듣자마자 바로 느낌이 왔어요. 애통해하는 노래 소리와 개그적 상황이 코믹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해 개그 제목까지도 아예 '쑥대머리'라고 짓게 됐습니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쑥대머리~"라는 애절한 가락의 소리와 사기꾼들이 창피해하는 표정의 절묘한 조합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21세기형 쑥대머리' 스타일을 창조한 김경욱은 "드라마나 영화만이 아니라 개그 프로그램도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의 유행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공들여 연출한 헤어스타일에 대해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면서 "물론 콘셉트도 중요하지만 스타일이 살아 있는 개그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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