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의 재발견] 7.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직지'가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는 하나 이 사실을 인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청주시에서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 1995년부터 매년 해외 순회 전시

1994년부터 세계 석학들을 초청 동·서양 금속활자 인쇄 기술과 '직지'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격년제로 개최했고, 1995년부터 매년 해외 순회전시를 가졌다.
그리고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하는 것이 이 책의 우수성과 가치를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보고, 1998년 9월 2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본부에 등재 신청 및 '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의 유치 신청을 했다.

그러나 '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는 이미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결정된 상태였다.

또한 '직지'는 199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 안건으로 상정도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들의 원산지와 소유국이 일치하지만 '직지'는 한국에서 간행한 후 프랑스가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네스코본부에서는 1998년 9월 8일 프랑스와 공동신청을 권유하는 전문을 보내왔다.

이에 10월 17일 외교통상부와 유네스코한국대표부를 통해'직지'가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프랑스정부에 협의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1999년 2월 4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부터 온 회신은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직지'가 '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못하자 청주시에서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청주에 유치하여 이 책을 등재시키고자 했다.

# 유네스코 기록 유산 등록 위한 움직임


이에 청주고인쇄박물관 최진섭 관장, 학예연구사 라경준·임채영 그리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허 권 문화부장으로 구성된 청주시대표단을 1999년 6월 10일부터 6월 12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 파견했다.

또한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의 청주 유치도 신청했다. 그러나 동 회의의 청주 유치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동 자문회의 개최지가 지금까지 각 나라의 수도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수도가 아닌 지방의 도시에서 유치한다는 것 자체에 자문위원들이 난색을 표시했다.

그리고 '제4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멕시코대표가 다음 회의 장소로 멕시코시티 유치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에 개최될 '유네스코 세계기록 전문가 회의'를 멕시코시티에서 가져가는 대신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청주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위원들을 설득해 마침내 1999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국립과학원에서 동 회의의 청주 유치가 결정됐다.

비록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청주에서 개최한다고 하더라도 유네스코 자문위원들이 '직지'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어렵기 때문에 유네스코 총회가 열리는 1999년 11월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의 옛 인쇄문화 특별전'을 개최했다.

# 직지 우수성 드디어 빛을 보다

이 전시회에 유네스코본부 abid 기록유산담당관을 비롯한 많은 유네스코 인사들이 참석해 '직지'를 비롯한 한국의 옛 기록물들을 관람하였고, 그 우수성에 대하여 놀라워했다.

2001년 5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추천한 '승정원일기'만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러나 '직지'가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 자문위원회 회의'의 안건으로 상정되자 이번에는 중앙정부의 관련부처에서 제동을 걸어왔다.

그러나 외규장각도서 반환의 실무부서인 구주국에서는 이 사항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당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나기정 청주시장, 김동기 청주부시장이 관련 부처를 적극 설득해 마침내 회의 시작 하루 전에 최종적으로 '직지'가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안건으로 상정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직지'도 다시 심사를 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지자 당시 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노르웨이의 벤딕 루카스씨가 '직지'와 '승정원 일기'의 심사를 마지막 날로 연기시켰다.

청주시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그리고 서경호, 박문열 등 당시 한국대표단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제5차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자문위원들을 1대1로 만나 설득하기로 결정해 이틀 동안 집중적인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회의 마지막 날인 6월 29일 오전에 '직지'와 '승정원일기'가 최종적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미 >


인류문화 발전 공헌 인정

유네스코에서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인쇄 문화의 전파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줬다.

이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준 기록유산으로 인정을 하게 되었고 현재 프랑스에 단 한 권만이 보관되어 있기에 그 희귀성이 유네스코의 기록유산으로 선정하는 데 크게 고려됐다.

아울러 '직지'와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서양의 금속활자본으로 인류의 기록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꾼 최대의 유산이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사업의 정신에 입각해 등재를 권고한 것이다. 유네스코측의 의견에서 보듯이 이제 '직지'는 한국만의 기록유산이 아닌 세계인들의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직지'는 정보 통신 매체의 혁신을 이루어내어 인류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또한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제3세계 등 약소국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99년까지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은 원산지와 소유국이 같은 기록물만이 그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한국에서 간행하고 현재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강대국에 약탈 당한 제3세계 국가의 기록물들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렇듯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한국인만의 쾌거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절 핍박을 받은 제3세계 등 모든 약소국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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