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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겨주는 山水<직지포럼>이상주 문학박사 극동대 외래교수
박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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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23  18: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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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산수가 어디에 있으며, 산수를 미인에 비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비유했단 말인가? 산수를 사람과 동격으로 인정해야만 가능한 비유다. 사람과 사물의 속성이 동일하다는 인물성동(人物性同)의 철학적 사유가 그들로 하여금 산수를 미인에 비유하였으리라.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산수관이며 심오한 사유인가.

조선후기에 오면 '산수평론(山水評論)'이라는 용어가 빈번히 대두된다. 즉 산과 물에 대한 평론이다. 미인 만큼 아름답다고 평가받은 산수는, 충북 괴산의 쌍계구곡이다. 조유수(趙裕壽1663~1741)가 지은「쌍계화수암동사중왕방 정해(華?巖同思仲往訪 丁亥: 화수암을 심제현(沈齊賢1661~1713)과 함께 찾아감 1707년 지음)」라는 시의 7,8구이다. &amp;amp;amp;amp;quot;산 모습 어두워지자 더욱 아름다워지는데, 미인을 이별하고 돌아오는 것 같네.&amp;amp;amp;amp;quot; 조유수는 날이 어두워져 산수를 더 이상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아쉬움을, 미인과의 이별이라 인격화하여 평론한 것이다. 다음은 조유수가 쌍계를 찾아오기 전에, 심제현이 조유수에게 준 시이다. &amp;amp;amp;amp;quot;고요한 텅빈 계곡에 가인(佳人)이 있으니, 쌍곡을 자못 그대에게 자랑하는 것을 비웃지 말라.&amp;amp;amp;amp;quot;라고 했다. 쌍계의 산수의 수려함을 함축한 시적 표현이다 이 모두 1813년경 정재응(1764~1822)이 '쌍계구곡'을 설정하기 전의 일이다.

유람객이 많이 찾아들기 전엔 쌍계계곡 주민들은 계곡수를 식수로 그대로 마셨다. 지금 쌍계는 무절제한 건축으로 태고의 고즈넉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몇 년전 까지도 가을이 되면 돌담 가에 의지한 감나무에 열린 빨간 홍시감이 미인의 볼그레한 볼 보다 더 화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편의주의를 추구하는 우리가 스스로 미인의 얼굴을 망쳐놓은 것이다.

이 시대 우리는 산수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한번 심각하게 묻고 싶다. 주5일제 근무시대에 취미여가활동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산수자연을 찾아간다. 그런데 자연보호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상당 수 산수유람객들은 산수에서 실컨 즐기다가 쓰레기를 산수에 버려 금수강산을 오염시키고 있다. 자연이 자신의 몸이나 집으로 생각했다면 그리하겠는가. 만약 옛 사람들처럼 산수를 미인으로 여겼다면 그리는 못하리라. 미인의 품에서 휴식하고 제맘껏 즐겼으면 최소한 미인의 몸에 더러운 자취는 남기지 말아야하지 않는가.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만큼 마음도 아름답게 가꾸자. 심체일치(心體一致)를 아는 철학자 되자

생각의 차이가 행동을 바꾸고 자연보호 수준을 바꾸고 문화수준을 바꾼다. 미인을 사랑하는 만큼 산수를 사랑하자. 물인일치(物人一致)의 미인관을 구비해보자. 미인은 항상 있는데 진정 미인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수를 사람과 동일시하는 산수의 인격화의 철학을 구비한다면, 자연은 청정함을 유지하게되고 당신은 미인인 자연의 영원한 연인이 될 것이다. 맘먹기 달렸다. 그러면 부처도 된다. '일체유심조'아니던가. 그러면 공자도 된다. '지행합일' 아니던가.



이상주 문학박사 극동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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