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교양학부)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다니엘 디포우의 &amp;amp;amp;amp;lt;로빈슨 크루소(1719)&amp;amp;amp;amp;gt;는 무인도 표류 테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amp;amp;amp;amp;lt;로빈슨 크루소&amp;amp;amp;amp;gt;를 읽으며 낯선 세계에 대한 모험을 상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흥미진진한 &amp;amp;amp;amp;lt;로빈슨 크루소&amp;amp;amp;amp;gt;의 밑바닥에 백인우월주의, 서양 중심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기 쉽다. 로빈슨 크루소가 28년 동안이나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야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로 끊임없이 자기 삶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근면한 인간으로 그려진 것에 비해, 원주민 프라이데이는 로빈슨 크루소에 종속된, 열등하고 부차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원주민 사회를 두루 여행하며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넘어선 상대주의적 시각을 견지한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아 미셸 투르니에는 &amp;amp;amp;amp;lt;로빈슨 크루소&amp;amp;amp;amp;gt;에 담긴 백인우월주의를 반성하고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에서 디포우의 작품을 다시 쓴 &amp;amp;amp;amp;lt;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amp;amp;amp;amp;gt;을 내놓는다.

프랑스어로 '금요일'을 의미하는 '방드르디'를 제목으로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르니에는 원작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로빈슨 크루소 뒤에 가려져 있던 프라이데이의 자질을 재조명하여 두 인물의 관계를 우월과 종속이 아닌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탈바꿈시킨다.

'방드르디'에서도 첫머리에는 로빈슨 크루소와 방드르디의 관계가 문명과 야만,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묘사됐지만, 동굴에 불이 나고 난 뒤에 방드르디가 말없이 행동으로 로빈슨의 흉내를 내며 제안하는 역할 바꾸기 놀이를 그들이 나누기 시작하면서 차츰 형제 관계,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어간다.

방드르디는 로빈슨이, 로빈슨은 방드르디가 돼 예전의 주종관계를 재연하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한다.

머리와 수염을 제대로 깎지 않고 햇살에 검게 그을려 외모로도 방드르디를 닮아가는 로빈슨은 항해 일지에서 &amp;amp;amp;amp;quot;해여, 나를 방드르디와 닮게 해다오. 웃음으로 활짝 피고, 송두리째 웃음을 위해 빚어진 방드르디의 얼굴을 나에게 다오.(...)&amp;amp;amp;amp;quot;라고 기도한다.

로빈슨이 방드르디를 자신에 종속된 미개인으로 여기기를 멈추고 동등한 동료나 형제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문명에 대한 우월감을버리고 문화의 상대성을 보기 시작하는 것에 맥이 닿아 있다.

어느 날 방드르디는 병든 독수리 새끼를 데려다가 먹이를 먹이지만 입에 넣어주는 먹이조차 독수리가 소화하지 못하자 그는 급기야 염소 내장을 말려 구더기가 생기게 하고는 구더기를 자기 입에 넣어 꼭꼭 씹어 꺼내어 독수리부리 안에 넣어준다.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입에 넣어 씹는 것만 보면 방드르디는 지극히 야만적일 수 있지만, 먹이를 씹어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병든 독수리의 입장에서 그를 위해 헌신하는 방드르디의 모습에서는 인류애를 넘어 동물과도 소통하고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이해할 줄 아는 범자연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을 배려하는 원주민 방드르디의 모습은 문명의 이름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소위 문명인의 모습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문화인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투르니에는 그가 다시 쓴 &amp;amp;amp;amp;lt;로빈슨 크루소&amp;amp;amp;amp;gt;, &amp;amp;amp;amp;lt;방드르디, 태평양의 끝&amp;amp;amp;amp;gt;에서 방드르디를 로빈슨보다 열등하고 야만적인 프라이데이가 아니라 나름대로 자연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발현하는 다른 문화의 향유자로 묘사함으로써, 다른 문화를 폄하하고 왜곡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나 자문화중심주의적 우월감을 버리고 나와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상대적이고 열린 시각을 제안한다.



/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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