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화학기술ㆍ원자물리 기술의 바탕

우리민족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추석)! 이 때는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요로움이 넘치는 때이다. 한가위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송편, 절편과 같은 떡인데, 이러한 떡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이 바로 절구와 맷돌이었다.

한가위와 관련한 전래 동화 중 어렸을 적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달나라에 사는 옥토끼와 절구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겹기만 하다. 토끼가 방아 찧던 '절구'는 곡식을 찧거나 양념을 빻을 때 또는 메주와 떡을 칠 때에 쓰는 기구로, 하루에 두 사람이 1가마 정도의 매조미쌀(玄米)을 쌀(白米)로 쓿었다.

절구는 신석기시대의 '돌공이'에서 시작되어 돌확으로 개선되었으며, 삼국시대에 이르러 절구와 같은 모양을 갖추었고, 나아가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디딜방아, 물의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로 발전하였다.

절구는 곡물을 넣는 절구통과 충격을 가하는 공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절구통의 재료에 따라 공이의 재료를 달리하기도 하였다. 나무절구에는 나무공이를 쓰지만, 돌절구나 무쇠절구에는 돌공이, 무쇠공이를 쓰기 때문에 재료와 일의 분량에 따른 일의 효율성을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벼 한말을 찧는데 나무절구에 나무공이는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비하여 돌공이는 반시간 정도 걸린다.

껍질 벗기기, 쓿기, 빻기(분쇄)등의 기능을 갖는 절구에는 곡식 등에 충격을 주어 곡식의 알갱이끼리 또는 알갱이와 연장사이의 마찰력과 충격력으로 쓿거나 빻는 과학적 원리가 담겨져 있다.

'맷돌'은 곡식을 압착하고 비벼서 껍질을 까거나 갈아서 가루로 만들 때 쓰는 기구이다. 맷돌의 기원은 신석기시대의 갈돌과 갈판에서 찾아지며, 삼국시대에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었고, 이후 가축을 이용한 연자매로 발전하였다.

맷돌은 위짝에 암쇠를, 아래짝 한가운데에 수쇠를 끼워 고정시키고 위짝에 ㄴ자 형의 손잡이를 끼워 돌리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맷돌은 중부와 남부 지방의 것에 차이가 보이는데, 중부의 것은 위아래의 크기가 같고, 갈아진 곡물가루를 담는 매함지나, 맷돌을 올려놓는 Y자형의 매판을 깔고 쓰는데 비해, 남부의 것은 아래가 위짝보다 넓고 크며 옆에 주둥이까지 길게 달려있어 매함지나 매판을 사용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맷돌에도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인 슬기를 엿볼 수 있다. 맷돌에 곡물을 갈 때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 사람은 곡물을 위짝 구멍에 떠 넣고, 나머지 한사람이 위짝을 돌리면, 이 도는 힘(원심력)에 의해서 다 갈려진 곡물들이 맷돌이 놓인 매함지로 흘러내리게 된다. 위짝은 항상 원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 힘은 원의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어, 곡물이 바깥쪽으로 밀려나오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가 커브를 돌 때 사람이 커브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이 원심력을 잘 활용하기 위하여 위짝 밑 부분에 달팽이 모양의 홈을 파서 곡물이 바깥으로 쉽게 밀려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맷돌 위짝의 밑 부분과 아래짝 윗부분에는 곡물이 잘 갈리도록 하기 위하여 맞닿는 면을 오톨도톨하게 쪼았으며, 갈린 곡식이 잘빠지도록 아래짝은 위로 봉긋하게 위짝은 오목하게 만들고 방사선의 홈을 파 넣었다.

인류가 물질을 재구성하여 이용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기술이 있다. 첫째는 물질을 갈아서 가루로 재구성하는 것이고, 둘째는 물질을 원자상태까지 부수어 재구성하는 화학기술, 셋째는 그 원자를 분해하는 원자력기술이다. 이러한 점에서 절구와 맷돌은 오늘날 화학기술과 원자물리 기술의 바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