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화 한국교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군대 간다고 오고 군복무가 끝났다고 오니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며칠 전 다녀간 한 제자의 모습이 며칠 내내 떠오른다. 지난 세월이 이제는 가물가물하여 공통의 화제가 없던 터라 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축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한창 공부하고 미래를 설계할 나이에 군대에 가니 제일 큰 걱정 중 하나가 머리 나빠질까 하는 두려움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어 몇 개라도 외우려 노력했는데 결국 포기하고, 산 하나를 넘어도 먹을 것만 주면 달려간다는 단순 무모를 제일 원칙으로 하여 살다 왔다고 한다. 1분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식사, 샤워 등 무궁무진하다거나, 총은 무거울 뿐 무섭지는 않다는 말도 들었다. 앞으로 다시 머리 쓰며 경쟁하는 삶에 적응할 일이 태산이라는 걱정만 아니었으면 신명나게 이야기해준 제자의 군대 생활은 그의 인생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생각해보니 군대 경험이 없던 터라 그저 사람이 그렇게도 변할 수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을 뿐, 군대에서의 혹독한 경험의 의미나 이제 극복해야 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이 든다.

엊그제 회의에서 만난 한 이공계열 학과의 교수님께 그 제자 이야기를 했더니 뜻밖에도 &amp;amp;amp;amp;quot;여자는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인간이라서 실험실에 들이지 않는 것이 원칙&amp;amp;amp;amp;quot;이라고 말씀하셨다. 실험실 생활이라는 것이 밤낮을 가리지 않아야 하고, 식사나 샤워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하거나 아니면 안 하고 오래 참는 것이 종종 필요하니 군 생활 버금가는 고통이 필요해서라는 것이다. 몇 해 전 그 교수님의 실험실에 들어온 여학생 하나가 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성원 사이에 분란만 일으키다가 실험실을 나간 이후 만든 원칙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서 교직보다는 기업이 좋겠다고 하며 좌충우돌하다가 모 기업에 취직했던 제자 한 명이 생각난다.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이 일하는 아니 오히려 밤에 반드시 일해야 유능해지는 회사 분위기, 상사의 의견이 곧 최종 의견이 되는 단순 무모한 의사결정 과정, 개인적인 취향 또는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드러낼수록 무너지는 인간관계, 필자에게 눈물로 그 동안의 억울함을 쏟아놓던 사연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는 학습지 교사로 살고 있으니 여자이면 무조건 교직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고 힘없이 말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딱하기만 하다.

2006년 11월 21일에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간한 각 국가별 양성 간 격차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15개국 중 92위로 인도, 네팔, 나이지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경제활동 참여 현황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많은 분야에서 여자들이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 이후 지속적으로 그 직업을 유지하기도 어려우니 양성 간 격차가 이렇게 큰 것이다.

제대로 적응 못하고 후배들의 앞길마저 막은 이름 모를 여학생도 분명히 무언가 부족했겠지만, 군대 다녀와야 적응할 만큼 고된 실험실 문화도 달라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여자로서의 삶을 무조건 감추지 않아도 되고, 낮 시간에 일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업무는 마칠 수 있어야 기업에서의 여성도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 군대 경험을 못한 여자이기에 말할 자격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군대 역시 개인의 생활과 성향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회와 격리시키기보다는 다시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곳이면 좋겠다.



이경화 한국교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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