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김혜경 시인ㆍ한국문인협회 회원

소나기구름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목청 높여 우는 매미의 성급함. 삶으로 주어진 여름의 몇 날을 매일 쏟아 붓는 소나기에 갉아 먹히고 절박하다.

며칠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나기가 내렸다. 삼복더위를 피해갈 수 있다는 얕은 생각에 내심 소나기를 반기기도 했다. 더 큰 이유는 조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의 저층인 우리 집은 베란다 바로 밑에 놀이터가 있고 그 옆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초등학교가 있다. 지하주차장으로 통하는 출입구도 있다. 매일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창밑 나무에서 매미라도 울어대는 날이면 귀에 솜뭉치라도 틀어막고 싶어진다. 비 오는 날이면 이 모든 소음이 빗속에 녹아내린다. 살 것 같은 날이 된다. 이런 날 창가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더할 나위 없는 명품의 삶을 선사한다. 거센 폭풍에

베란다 구석에 세워 둔 나무판자가 넘어가 화분과 내 머리를 덮쳤지만 매일 시달리는 소음에 비한다면 넉넉히 참아줄만 했다.

우기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러워 거세게 빗줄기가 퍼붓다가도 금세 해가 들곤 했다. 해가 나기 무섭게 매미가 목청을 높인다. 매미의 삶에서 한줄기 햇살은 절박한 삶의 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쉽게 버리는 빵 한 조각이나 쌀 한 줌이 누군가에겐 절실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폭우 속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만났다. 폐지를 수집하여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울컥 목이 메게 한다. 내가 같잖게 여기던 햇살 한 줄이 그들에게 소중한 양식이 될지도 모른다. 폐지를 주워 모아야만 쌀 한 줌을 살 수 있고 어린 손자의 학비를 낼 수 있는 할머니에게 매일 퍼붓는 비는 얼마나 야속 했겠는가. 신께 허락 받은 여름의 몇 날 안에 삶의 마지막 소임을 마쳐야 하는 매미의 다급함. 삶의 마지막 애필로그를 완성해야 하는데 젖은 날개가 마를 틈이 없다. 햇살에 열매를 붉게 영글려야하는 과일 나무와 촘촘히 알곡을 채워야하는 곡식의 애타는 심정을 내가 모르고 지냈나보다.

비 오는 날을 손뼉 쳐 반기던 좁은 이기심이 뚝 끊긴 매미의 울음에 미안해지고 푹푹 삶아대는 날엔 매미가 극성스레 울어대는 나무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짜증스러움의 교차. 나 좋은 대로 세상일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나 좋은 만큼 가슴 아픈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 모양이다. 자연의 조화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 할 능력이 없으니 자연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매일 하늘을 보며 짚신과 우산을 파는 두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내 속에서 오간다. 햇살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해를 기다리는 마음들을 요즘 하늘은 용케도 하루에 몇 차례씩 알아주셨다. 더위를 가시게 해주는 빗소리를 소나타 연주쯤으로 여기던 나는 대박 터진 우산 장수였는지도 모르겠다. 빗물에 흠씬 젖어 물꼬를 보는 맨발의 농심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의 짚신장수였으리라. 오늘은 환한 햇살이 번졌으면 좋겠다. 붉게 여물어 가는 고추에 약이 오르고 탱탱하게 포도알이 여물도록 따가운 빛살이 습하고 여린 곳곳에 고루 스몄으면 좋겠다. 하염없이 젖은 그네만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햇살에 밝게 빛났으면 좋겠다. '남극의 햇살을 일주일만 더 내려주소서' 라는 시구가 절로 새어 나온다. 드세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구수하게 꺾어 넘어가는 유행가로 기꺼이 들어주리라.



김혜경 시인ㆍ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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