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불능화이행ㆍ美 동의ㆍ평화체제 당사국 정의' 선행돼야

올해 안에 평양 또는 서울에서 남.북.미.중 4자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개시선언을 하는 `대형 이벤트'가 가능할 것인가.

평화체제 협상의 최고위 실무책임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7일 평화체제 협상 개시 선언을 위한 남.북.미.중 4자 또는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수도 있다는 화두를 던졌다.

송 장관은 이날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2007 남북정상 선언문' 4항에 대해 `유권해석'을 했다.

그는 선언문에 언급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구상과 관련,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협상의 끝에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평화체제 협상 개시 선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비핵화 진전에 따라 (당사국 정상들이) 종전 협상 개시 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송 장관은 비록 당사국 정상들이 평화체제 협상의 끝에 만나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지만 그 보다는 평화체제 협상 개시 선언을 하는 방안에 무게를 실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의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 성사 여부와 관련, "추진하되, 노 대통령 임기를 염두에 두고 속도를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임기 내에 이뤄진다, 아니다 라고 단정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송 장관과 천 대변인의 언급으로 추론해 보면 남북 정상은 선언문을 통해 미국 또는 미.중 정상에게 평화체제 협상 개시를 위해 한반도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평화체제 협상의 개시는 곧 6자회담에 명시된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당사국간 별도 포럼'의 출범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남한 또는 북한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의 출범을 선언하는 그림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그렸고 그 그림이 정상 선언문에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평화체제 포럼의 출범은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와 신고의 진전에 맞춰 이뤄질 것이라는게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의 언급이었던 점으로 미뤄 연내 4자 정상회담도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6자회담 10.3 합의문에 불능화와 신고의 시한으로 연말을 상정한 만큼 목표한 대로 연내에 불능화.신고를 이행한다면 평화체제 협상 출범 선언을 위한 4개국 정상회담도 이론적으로는 연내에 열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내년 북한의 핵무기 및 플루토늄의 처분을 놓고 벌일 최종담판을 앞두고 북.미 정상이 만나 비핵화 의지와 관계 정상화 의지를 맞교환하는 이벤트가 성사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4자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 및 시기 문제는 대략 미국의 판단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달 7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때 북이 검증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경우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협정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공동서명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또 이 같은 구상을 남북정상회담때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노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북.미 정상의 대면을 의미하는 이 이벤트의 전제는 검증가능한 비핵화 이행이었다. 다시 말해 부시 대통령의 `평화협정 언급'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또는 핵폭발장치)와 무기급 플루토늄을 폐기 또는 국외 반출하는 수준까지 비핵화를 했을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7월 서울에서 행한 강연에서 부시 대통령의 방북과 4자 정상회담 시기 및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고위층(정상급)의 만남은 평화체제와 비핵화, 관계정상화 프로세스의 끝에 이뤄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과정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북.미 정상의 만남은 평화체제 협상의 끝에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간 파악된 미국의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면 4자 정상회담의 연내 등 조기 개최는 어렵다는 전망이 가능해진다.

또 중국 변수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자 또는 4자'라는 정상 선언문의 문구에서 보듯 중국을 배제한 평화체제 협상 구도가 옵션의 하나로서 남북 정상 합의문에 담긴 만큼 중국을 협상 당사자로 포함하느냐는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질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했고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로도 참여했던 중국으로선 자국이 배제된 3자간 평화체제 협상은 어떻게 해서든 저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결국 연내 당사국 정상회담이 개최되려면 불능화 및 신고단계의 순조로운 이행, 북.미 정상이 포함된 다자 회동의 조기 개최에 대한 미국의 `OK 사인', 평화체제 협상 참가국 문제에 대한 조기 정리 등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같은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주도로 무리하게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연내에 개최하려 할 경우 `연말 대선을 고려한 무리한 시도'라는 나라 안팎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송 장관도 "비핵화와 그에 따르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개별 국가들의 판단에 따라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시기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해 현재로선 다자 정상회담의 시기를 속단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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