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주지 다툼은 가사 입은 도둑의 짓" 길상사 가을 법회에서 불교계에 쓴소리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수행자의 겉모습을 하고서 속으로 돈과 명예를추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자(佛子)가 아니라 가사(袈裟) 입은 도둑입니다."

불교계 원로 법정(法頂) 스님이 21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에서 가진 가을 정기법회에서 공주 마곡사와 제주 관음사의 주지선출 문제, 신정아 파문을 계기로 드러난 동국대 재단이사회 스님들의 계파간 갈등 등 조계종단에서 생겨난 잡음에대해 자성과 함께 쓴소리를 했다.

설법을 위해 자리에 오른 법정스님은 "이 자리에 서기가 송구스럽고 민망하다"고 입을 연 뒤 "최근 종단 일각에서 주지 자리 등을 놓고 다툰 작태는 출가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런 다툼은 가사 입은 도둑들이나 벌이는 짓"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출가는 살던 집에서 그냥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다툼을 일삼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출가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승가의 생명은 청정함에 있으며, 자유와 평안의 경지는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정진할 때만 유지된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수행승들은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만 못하다고 했고, 부처님은 어찌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온갖 악업을 짓고 있느냐고 승가의 타락을 꾸짖은 바 있다"면서 "참선하고 기도하는 모습만이 거룩하고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불자 2천여 명이 법당과 앞마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진행된 길상사 가을 법회에서 법정스님은 '아름다움'을 주제로 설법을 이어갔다.

법정스님은 "오늘날 우리는 돈에 얽매여 사느라 삶의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등지고 산다"면서 "아름다움은 삶의 진정한 기쁨을 얻는 길이요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유욕을 버릴 때 발견할 수 있다"면서 "텅 빈 마음을가질 때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저절로 드러나며, 그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나와 대상이 일체를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정스님은 "중국 임제(臨濟.?-867) 선사는 있는 그대로가 귀하기 때문에 일부러 꾸미려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자연스러움은 그 자체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하는것이어서 그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으며, 그런 아름다움은 사랑의 눈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과도 같다"며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길 당부했다.

법정스님은 "똑같이 '사유'하는 모습을 표현했지만 한국의 반가사유상은 고요, 평안, 잔잔한 미소를 전해주는 반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무거운 고뇌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다르다"면서 "반가사유상이 고요와 평안을 전해주는 것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거리낌 없는 아름다움'이 구현돼 있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 뛰어난 장인은 돈이나 명예 등 인간적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동양 예술에 깃든 아름다움의 깊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내면의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자꾸 퍼내도 끊임없이 솟아날 수있도록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면서 "시들지 않고 영원한 기쁨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이웃과 나눌 때 드러나기 때문에 일상의 삶에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설법을 마무리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법정스님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길상사 정기법회 때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설법하고 있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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