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요즈음처럼 매서운 바람과 함께 흰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른들은 누구나 고향의 한옥에서 온 가족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와 화롯불에 익는 밤과 고구마 등을 맛있게 먹으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보내곤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게 된다.

거센 바람과 눈보라에도 사랑방은 언제나 정겨움과 따뜻함이 넘치는 곳이었는데 이는 자연의 천연소재를 빌어다 지은 한옥과 그 곳에 없어서는 안 될 구조인 창호(창과 방문)의 덕이었다.

창호란 집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거나 품기 위해 창이나 출입구에 설치되는 각종의 창이나 문으로, 외부로부터의 기상변화인 비?바람?눈과 더위?추위를 막아주고, 집 안팎의 소리나 빛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신선한 공기의 유입으로 집안의 통풍이나 환기, 채광의 기능을 들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인『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간행 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천3백년 전의 것이다. 이렇듯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종이인 한지(韓紙)를 만들어 온 우리 선조들은 한옥의 창과 문에 창호지와 문풍지라는 종이를 바르는 독특한 주거문화를 이루어 왔다.

창호지란 문을 바르는 종이를 말하며, 문풍지란 문짝 가장자리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바른 종이를 일컫는다. 주로 한지로 만들었다.

한지는 예로부터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고, 색깔이나 크기, 생산지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였다. 한지를 쓰임새에 따라 나누어 보면, 문을 바르는데 쓰는 창호지(窓戶紙), 그림이나 글씨를 썼던 화선지(畵宣紙), 책을 만들 때 썼던 책지(冊紙), 족보를 만들 때 썼던 족보지(族譜紙), 방바닥을 바르는 장판지(壯版紙), 도배용으로 쓰는 도배지(塗褙紙), 부채 만드는 데 썼던 선자지(扇子紙), 병졸들의 겨울옷 속에 솜 대신 넣었던 갑의지(甲衣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질기고 품질이 좋은 중성지인 한지로 만든 창호지를 발라 사용하는 전통가옥의 창호지문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리문에 비해 단열 효과가 매우 우수하게 나타난다(창호지는 열전도율이 0.1, 유리는 0.9). 이것은 단순히 열전도율에 의한 효과라기보다는 대류에 의한 것으로 창호지 주변에 얇은 공기층이 형성되어 열 보존을 양호하게 해주는데, 창호지에 문살을 촘촘하게 하여 공기를 잘 가두어 두려는 것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여 준다. 때에 따라 창호지를 문살 안팎으로 바르면 한겹보다 보온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밝혀지는데, 창호지문에서도 이중창의 효과가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또한 창호지는 닥나무의 인피섬유 사이로 작은 틈을 많이 가지고 있어 공기를 잘 통하게 해주고 방안이 공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점이 겨울철에는 방안의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여름철에는 밖의 뜨거운 열을 차단하였던 과학원리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창호지는 다른 재료에 비해 공기에 포함된 요염물질을 걸러주는 효과가 있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 생성된 냄새를 빠르게 제거하여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며, 반투과성을 가지고 있어 직사광선을 차단하여 은은한 빛을 우리에게 주기도 한다. 그야 말로 웰빙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듯이 숨쉬는 전통한지로 만든 창호지는 통기성?보온성?오염을 흡수하는 힘이 다른 재료에 비해 뛰어남을 알 수 있는데, 겨레의 과학슬기가 듬뿍 담긴 전통한지의 많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 기능성의 새로운 한지 수요를 창출시켜야 할 것이다.

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