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에 오른 연예인 중 상당수 "이게 아닌데…"

6일 연예인들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의 배경과 과정 등을 놓고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지지 선언에 이름이 거론된 연예인들이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의 이경호 이사장은 6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낭독하고 뜻을 함께 하는 연예인 39명의 이름이 적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리에는 이덕화 이훈 변우민 독고영재 이지훈 소유진 김보성 김재원 등이 함께 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보도자료에 적힌 39명 중 김정은, 박진희, 홍경민이 오늘 아침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서 빼달라고 했다. 하룻밤 사이에 바뀐 사람들이다. 이들 빼고는 다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보도자료에 적힌 명단에 관해 묻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명단에 포함된 연예인을 일일이 접촉해 의사를 물어 반영한 것이다. 오히려 지지 뜻을 밝힌 연예인이 훨씬 더 많은데 '마음 속으로 지지는 하나 이름 올리는 것은 불편하다'는 연예인들은 이름을 뺐다. 명단에 오른 39명은 100% 자율적 의사를 반영했다"고 말한 뒤 "질문을 하는 저의가 뭐냐"며 불쾌해했다.

하지만 그가 100% 확실하다고 밝혔던 39명 중 이미 3명이 반발을 하고 나선 것.

그런데 기자회견 후에 더 많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소유진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황…뻘쭘…그런 자리일 줄은…"이라며 황당함을 드러냈고, 김정은ㆍ한재석의 소속사 예당엔터테인먼트는 "본인들의 동의 없이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고 밝혔다.

김선아, 최수종, 정준호 측 역시 "본인들은 봉사활동 지원에 관한 행사인 줄 알았지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행사인 줄 몰랐다며 무척 당황해하고 있다"고 전했고 에릭 측은 "아예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는 통보 자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성현아는 "명단에 포함된 것을 보고 기자회견 전에 이름을 빼달라고 이 이사장에게 전화했는데 이름이 빠지지 않아 너무 황당했다"며 기막혀 했고, 행사 취지를 정확히 알고 있던 연예인 중에서도 '도저히 이런 식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기자회견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린 경우도 확인됐다.

이에 앞서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장에서 "명단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연예인 본인이 아닌 매니저들에게 확인을 해서 그런 것"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직접 이런 의사를 밝혔으며, 이 이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연예인과 매니저들을 대단히 불쾌하게 만들며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지 선언 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연예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를 돕겠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어려운 연예인들의 복지 개선을 위해서는 언제든 뜻을 함께 할 의향이 있지만 그것이 특정 대선 후보의 공개적 지지로 연결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 여배우는 "이런 식으로 봉사활동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봉사활동을 나서지도 못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BBK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난 이튿날 지지 선언이 이뤄진 것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더욱 유력해지자 줄서기를 한 것 아니냐는 것.

그런데 현재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적극적으로 반발도 못하고 있다.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유력 대선 후보와 불필요하게 껄끄러운 관계를 만드는 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의사도 없지만 이제 와서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하면 반대로 누구를 지지하지 않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 직후 '김정은ㆍ박진희ㆍ홍경민, 이명박 지지 철회'라는 제목의 보도들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 지지를 한 적도 없는데 입장을 바꿔 지지를 철회한 것처럼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에 반발하는 연예인들은 "난 정치에 관심이 없고 내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말할 생각도 없다"고 항변하지만 이제 와서 명단에서 이름을 빼겠다고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으로 해석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어려운 연예인들을 돕겠다는 연예인들의 '순수한 생각'이 누구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한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적 행사가 됐다.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는 연기자와 코미디언, 성우, 영화배우, 가수 등이 기금을 모아 생계가 어려운 동료를 돕기 위해 올 3월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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