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 송열섭 신부ㆍ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송열섭 신부ㆍ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20여 년 전 어느 날 천주교 남자 교우 두 분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임을 해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속해 있는 그 단체는 설립된지 2년쯤 됐는데, 설립 당시에는 단원이 10여명이 넘었고, 한동안은 20여 명이 모일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다가 이제는 2-3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참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두분 세 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포기하면 이 모임은 아예 사라지겠지만 두분이 마음을 모아 함께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용기를 얻고 돌아갔다. 그 뒤 두세 명이라도 꾸준히 모였고, 얼마 있어 그 모임은 조금씩 그 수가 늘어갔다.

본질에 대한 인식 부족

대부분의 사람은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적고 작은 것에는 실망하거나 포기하기 쉽다.

이러한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에서는 결국 눈에 보이는 양적인 것은 소중하게 다뤄지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질적인 것은 소홀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낙태왕국 소리를 듣고, 세계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낙태가 없이는 산부인과 운영이 어려운 서글픈 상황과 이름난 경제인, 정치인, 연예인들도 자살하는 안타까운 현상 저변에는 이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것에 대한 홀대와 본질적인 것에 대한 인식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눈을 돌려 자연의 이치를 보면 작은 것의 가치를 쉽게 발견한다. 작은 싹이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며, 물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내가 모여 강을 이룬다.

우리말 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티끌모아 태산이라 한 것은 옛 어른들도 작은 것의 가치 즉 티끌과 한 걸음이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큰 것은 결국 작은 것으로 시작되고 많은 것은 적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에서 작은 것의 가치 발견

인간의 생명도 다르지 않다. 인간 생명의 첫 걸음에는 작은 것, 즉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수정란, 그리고 배아가 있다. 배

아가 없다면, 태아도 없고, 태아가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이다. 조상들이 일찍부터 태교를 강조한 것은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인간 교육이 시작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나면 이미 한살을 인정했다. 그리고 갓난아이가 성장하여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며, 청년이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

그런데 사람들은 성장한 어린이나 성인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왜 배아나 태아의 생명은 필요하다면 침해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때는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한 과학자를 영웅처럼 떠받들지 않았던가.

불치병을 치료하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고 귀한 일이지만, 한 인간의 불치병 치료를 위해 또 다른 인간 생명인 배아를 침해하여 없애는 것은 다만 파렴치한 폭력이요 살인일 뿐이다.

예수님은 위대한 하느님의 나라를 작디작은 겨자씨에 비유하셨으니, 진정 위대함은 작은 것의 가치를 존중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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