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우리는 항상 일상에서 하는 고민이 있다. 콜라를 마실 것인가, 사이다를 마실 것인가.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짬짜면'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선택과 집중'은 이제 기술력이나 제품에 국한 된 어휘가 아니다. 일과 사랑, 음식, 패션, 공간 등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갈등, 선택 후의 집중도, 그리고 집중 후의 만족도에 대한 결과로 인해 살아가는 것이다.

공간(空間) 언어 중에는 '비움(void)'과 '채움(solid)'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비움(void)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 보면 비어있다, 혹은 크고 놀라운 공간이라는 뜻이 있다. 보통 비어있다는 뜻으로 건축에서는 많이 쓰여진다. 그러나 비움은 사전적 의미보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단어의 의미라기 보다는 이 단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비움 즉 '여백'은 이성을 중시하고 물질세계를 강조해온 서구 정신과 대비되는 동아시아적 가치를 포괄하는 핵심용어이다. 비움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하는, 비어있지만 기운(氣韻)으로 충만한 세계이고, 경계와 차이를 넘나드는 생성을 의미한다.

채움은 사전적 의미로는 형태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속이 꽉 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채움도 비움와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보통은 속이 꽉 찬이라는 뜻으로 void의 반대적인 의미로 쓰인다. '가장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모자란 듯하다. 하지만 그 효용이 다함이 없다. 충만된 것은 텅 빈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효용에는 끝이 없다'라고 노자가 말했듯이 차 있음으로 비어 있음조차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두 용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그 용어를 쓰는 사람이 무엇을 채우고 비우느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움과 채움의 기준이 되는 채우고 비우는 것이 무엇이냐가 비움와 채움'라는 용어를 정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술은 채워야 맛이고 잔은 비워야 맛이다'는 이제는 옛말이 된 듯 하다.

연말 주제는 절제와 침묵이며 그 속에는 비움의 아름다움이 가득해야만 하며 채움을 준비하는 비움의 자세로 우리는 이제 끝이 아닌 시작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끝'에 대한 희열 및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 밤을 기다리고 주말을 상상하고 월말을 기대하며, 연말에는 뭔가 달라져 있을 자신을 꿈꾼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이고, 축구는 마지막 10분이 가장 중요하며 영화에서는 마지막 반전을 위해 장장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주리를 틀며 지키고 있다. 일이 엉망으로 돼도 '막판 뒤집기'를 기대하여 스스로 자위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바꿀만한 용기를 내지 못한다.

'끝을 맺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가 없다'고 노자가 말했듯이 단지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짬짜면, 즉 비움과 채움을 적절히 안배해 나감으로 인해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하는 '질(quality)'좋은 끝맺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현실을 되돌아 보면 우리는 너무 달려왔다. 난 좀 걷고 싶은데도 주위가 나를 걷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speedy, short, small, slim, spot 의 빨리, 짧게, 작게, 가늘게, 당장이 마치 현대인의 모토로 삼아지고 있다. 천천히, 크고 굵직하게, 투박하며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고자 하는 이는 이미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달리고 뛰고 날고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천천히 마음을 풍요롭게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한 숨 돌리는 여유가 절실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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