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칼럼(청주공예비엔날레총괄부장)

오렌지족, 핑크족, 댄디족, 아티젠족…. 시대마다 유행이라는 게 있다. 특히 소비성향이 강하고 감성적이며 즉흥적인 젊은이들에게 유행은 쇼핑이자 삶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오렌지족은 1970·80년대 부모의 부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 일대에서 퇴폐적인 소비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이들은 오렌지처럼 연하고 밝고 나긋나긋한 것을 좋아하며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철저한 개인주의·향락적 소비문화에 빠져 부모의 돈으로 자유분방하게 생활한다.

오렌지족에 이어 등장한 시피(Cipie)족은 개성(Character), 지성(Intelligence), 전문성(Professional)의 머리글자를 딴 CIP에서 나온 말로 부모의 돈으로 흥청망청하는 오렌지족과는 달리 자신이 벌어서 센스 있는 소비생활을 즐기는 젊은 남자들을 지칭 하는 용어다. 댄디족은 주로 방송·광고계·사진작갇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요즘 인기 가 높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분위기를 찾고 자신을 가꾸는데 인색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최근에는 아티젠(Art Gener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유명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이 담겨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데 이들에게 예술은 곧 생활이라는 생각과 실천이 담겨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하이터치 감각을 통해 생산된 다양한 의류를 입고 즐기며, 시대 흐름에 맞는 명품 디자인을 즐긴다. 가구, 전자제품, 사무공간 등 발 닿는 곳곳이 특별한 멋과 맛으로 연출된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예술과 결부시키려는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한다. 상품에 대한 욕구가 아닌 욕망에 사로잡힌 여유있는 소비자가 아티젠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마케팅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나는 예술이다, 고로 잘 팔린다"라는 문구가 그들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지금 나는 시대의 유행을, 젊은이들의 소비성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자 공간이다. 더 나아가 디자인은 국가와 지역의 브랜드이자 얼굴이다.

기업체에서 생산되는 상품디자인에서부터 포장디자인, 광고디자인의 중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산업의 현대화에 따라 기업들은 자사제품의 수월성 및 상품가치를 드높이는 최선의 전략으로 디자인을 선택하고 있다. 냉장고나 핸드폰에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감성을 담는 등 기업마다 디자인 전쟁이 치열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기업들은 세계 여러 곳에 디자인 연구소를 개설해 각기 특성에 맞고 차별화된 디자인을 연구한다. 제품뿐만 아니라 광고와 포장분야에까지 디자인은 한눈 팔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예술가들에게 디자인은 생명이자 영혼이다. 작가의 감성과 기예는 정점은 디자인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디자인비엔날레가 개최되고, 대학마다 미술 및 공예분야 학과가 디자인학과로 개편되거나 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디자인의 차별성, 디자인의 독창성이 없는 예술이나 상품은 더 이상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당하지 않는다.

새롭게 출발하는 이명박 정부도 실용과 창조를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지만 그 중심에 디자인이 있는 것이다. 각 분야에 걸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이것이 실용화되는 세상에 디자인은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존재다. 무자년 새해에는 창조하자, 감성형 인간이 되자. 그리고 우리의 삶과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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