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완하ㆍ문학가 · 한남대 문창과 교수

2008년이 밝았다. 지난해의 일들은 모두 잊고 다시 새해의 계획을 짜고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올 해는 나에게 몇 가지의 계획들이 있어 조금 분주하게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연말과 연시를 연구실에서 보내고 있다. 나의 연구실 서쪽으로는 허공이 올려다 보인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여름과 겨울방학이면 그 허공을 마주하고 몇 편씩의 시를 써서 발표하고 그것들을 묶어서 지난 가을에 네 번째의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을 내고서 나는 좀 더 시에 대하여 홀가분해 졌다. 나의 문학적 20대의 열정으로부터 40대 말의 한 지점에 이르러 펴낸 나의 4시집. 그리고도 내 가슴 속에는 아직 시적 열정과 좋은 시를 쓰겠다는 일념이 웅숭깊게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숨 쉬며 나를 성찰하고 깨닫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일상의 복잡하고 다단한 일들로부터 나를 맑게 정화하고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곤 하였다. 창밖의 허공으로는 솟아오른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들은 허공의 한 가운데로 솟아올라 나의 시야에 잡히곤 했는데, 그것들은 계절의 변화를 따라서 새롭게 바뀌어가곤 했다. 한순간에 나뭇잎들이 피어났다 지는 순간을 목격하였다. 그러면서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이 세상의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얻은 해답은 바로 허공이었다. 바로 나의 연구실 서쪽 창밖으로 한없이 펼쳐져 있는 그 허공. 허공이라는 말이 내게 주는 뉘앙스는 조금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것은 비어 있지만 가득 찬 것이고, 가득 차 있지만 또한 비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의식 세계의 한 귀퉁이에는 허공이 있고 한없는 깊이로 이 지상의 그리움들을 빨아올렸다. 그곳에는 허공이 키우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서있었다. 그 나무들의 가지마다 짙은 이파리를 매달고 그때 새들이 날아와 그 나뭇가지에서 쉬면서 즐겁게 노래를 하였다.

그러다 나뭇가지에서 들리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어느 순간 사라져 그 곳을 내다보면 나뭇잎들도 모두 떠나고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계절이 간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나는 연구실 밖의 허공을 내다보면서 내 의식 속의 허공을 파헤쳐 보았다. 바로 그곳, 허공을 열어 보니 그곳에 나뭇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후 나는 나뭇잎들이 질 때면 나뭇잎들이 어디로 가는가 창밖을 예의주시하였다. 그때 보았다. 나뭇잎들은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따라서 가고, 바로 그쪽으로 나뭇가지들은 창문을 하나씩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내 연구실 창밖의 허공이야 말로 가장 좋은 나의 상상력의 공간으로 다가 서고 있다. 그 허공은 나의 사색과 성찰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모든 존재들이 소멸하면 가 닿는 처소가 되는 것이다. 올 여름도 그곳에서는 매미들이 울다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고 있다. 지난해의 매미들이 허공 속으로 가서 일 년을 쉬고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올여름이면 다시 나의 연구실 밖 나무로 날아와 한 계절을 장식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조만간 봄이 오고 그 나무들이 열어 놓은 창 안에서 이파리들이 걸어 나올 것이다. 그 창안으로 새들은 다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김완하(시인 · 한남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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