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화양구곡 제5곡은 '첨성대' 인가 ?<시론>극동대 외래교수 문학박사 이상주
이상주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2.21  19:15:1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학문하는 사람이 구비해야할 요건중의 하나는 '박이정'이다. 다음은 명판 고식(明判 高識)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 광박하고 정치(精緻)해야한다. 아울러 합당한 근거와 자료에 입각하여 고도의 식견으로서 어떤 대상과 관련된 문제를 명확하게 감식 판단해야한다. 학자는 기존의 학설이나 일반화된 사실이라도 그 진위여부에 한번 쯤 관심을 가져야한다. 간혹 기존의 학설이나 통용되는 사실이 오류인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류의 단서가 포착되면 그 진상을 합리적으로 규명해야한다. 이런 한 사례를 화양구곡 '곡(曲)'의 순서에서 볼 수 있다.

지금 화양구곡의 순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알려져 있다. 제1곡 경천벽, 제2곡 운영담,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 제5곡 첨성대, 제6곡 능운대, 제7곡 와룡암, 제8곡 학소대, 제9곡, 파곶이다. 괴산군청을 비롯하여 충청북도청등에서 최근까지 간행한 모든 책은 물론, 인터넷과 화양구곡에 설치돼있는 안내판에도 그렇다. 조선시대 대다수 문인들도 '첨성대'를 화양구곡 제5곡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착각한 이유는 첫째 '화양지'와'화양구곡도설(華陽九曲圖說)'후기(後記)의 기록을 보지 못했거나, 민진원이 그 순서를 그렇게 정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장에 가보면 첨성대가 능운대보다 하류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도수(1699~1733), 임상주(1710~1791),박윤원(1734~1799), 윤병의(1822~1889), 박노중(1863~1945), 정운경(1861~1939)등은 시문에 제5곡을 '능운대'로 보았다.

화양지(華陽誌)권1 구곡동천(九曲洞天) 부(附)에는 제5곡이 '능운대' 제6곡이 '첨성대'로 명기했다. 화양지는 화양구곡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기록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록을 믿는 것이 온당하다.

권섭(權燮·1671~1759)의화양구곡도설(華陽九曲圖說) 후기(後記)를 살펴보자. 이 기록은화양지보다 앞선 기록이다. 이 글을 통해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이 경천벽을 1곡으로, 운영담 2곡으로, 읍궁암을 3곡으로, 금사담을 4곡으로, 능운대를 5곡으로, 첨성대를 6곡으로, 학소대를 7곡으로, 와룡암을 8곡으로, 파곶을 9곡으로 확정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 김진옥이 화양구곡에 포함시켰던 칠송정(七松亭)과 선유동이 제외했다는 사실과 화양구곡에서 제외된 선유동에 선유구곡(仙遊九曲)이 설정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의 기록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화양구곡의 순서가, 본래 정해진 순서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화양구곡 제5곡을 '첨성대'에서 '능운대'로, 제6곡을 '능운대'에서 '첨성대'로 바로 잡아야한다.

기록의 중요성과 고식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한줄의 기록이 오류를 정정하는 단서가 되고, 한 장의 사진이 오해를 불식시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기록을 중시하고 고식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이상주 극동대 외래교수 문학박사

이상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