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칼럼>충북대 교수,객원 논설위원

조선 시대 양반집 마나님께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그만 물에 빠졌다.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라 노를 젓던 사공이 얼른 손을 내밀어 마나님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마나님은 당연히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며 두고두고 은혜를 잊으면 안되는 게 현대사회에서의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마나님은 목숨이 구해진 그 순간 가슴 속에 품었던 은장도를 꺼내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지조와 절개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엔 감히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손목을 잡히는 일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할 만큼 커다란 수치심이었기 때문이다. 엉덩이가 보일 듯 말 듯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당당하기만한 100년 후의 지금 시대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사사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내 손목을 꼭 잡아주길 기대하거나 오히려 늦게 잡았다고 다그치진 않을까? 오래 전엔 목숨을 바꿀만치 엄청난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어처구니 없이 사사로운 일로 치부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중요함이나 가치가 더욱 깊이 있거나 변함이 없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졸업식이 한창인 2월이다. 졸업식장을 둘러보면 다양한 얼굴들이 어우러져있다. 상급학교로의 입학이나 취업이 보장되어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실패와 낙방으로 어두운 그늘이 행사내내 가시지 않는 이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 때 길은 두 가지 뿐이다. 넘어져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거나 혹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인생을 다시 결정하게 해 주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굳이 실패를 미화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이 다음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실패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아니한가?

미국 메이져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워런스팬이라는 명투수가 이런 말을 하였다. "배팅은 타이밍이다. 피칭은 타자의 타이밍을 뒤흔드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이러한 타이밍은 매우 중요하다. 시대를 너무 앞서도 혹은 너무 뒤쳐져 있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1982년에 국내 최초로 구강청정제가 출시되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구강청정제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에 걸맞지 않아 결국은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시기를 너무 앞선 실패였다. 그 후 때를 기다리다가 10년도 훌쩍 지나 1996년에 재출시 하여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여 연 매출 3억 원 정도였던 것이 250억여 원 규모의 구장청정제 시장을 탄생시켰다. 시기를 앞선 실패 사례는 다양하다. 1988년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노노껌'이라는 무설탕껌은 실패하였으나 1994년 '덴티큐'로 개명한 무설탕 껌은 성공하였다. 1986년 매운라면"열라면"이라는 브랜드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1997년 매운라면을 선풍적인 인기몰이로 몰아넣어 지금도 성공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실패라는 것이 좌절은 아니지 않은가? 시대를 앞서 시기를 못 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미래의 어느 순간을 위한 기다림일 수도 있다. 혹시 지금의 실패가 세상을 포기 할 만큼의 커다란 좌절처럼 느껴질 지라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느낄 땐 참으로 사사로운 일이 될 수 있기에 사사로운 것이 목숨걸지 않기를 기대한다.

나의 어떤 장점을 성공요인을 정확한 시기에 작용시킬 것인지 그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환한 미소 속의 내일의 나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김미혜 충북대 교수,객원 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