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순 칼럼>서울본부 취재국장

미국의 대통령들의 귀소(歸巢)본능은 대단하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향지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으로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전례를 만든 사람은 조지 위싱턴 대통령이다. 그는 2번의 임기를 마친 후 ,한번 더를 외치는 국민들의 요구를 뒤로한 채 고향 마운트 버넌에서 위엄 있는 여생을 보냈다. 퇴임 후 고향인 미주리주 생가로 돌아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옛 친구들과 어울려 보낸 보통사람으로서의 삶, 20년 때문에 더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대통령은 조지아주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신앙심을 싹 튀우는 데 힘을 썼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고향에 내려가 봉사 활동에 헌신한 공로로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다. 이 메달은 군인이나 공무원을 제외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다.

국가에 대한 봉사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휼륭한 이웃이 되는 것을 생의 한 과정으로 여겨온 이들은 그래서 권좌를 떠난 후에도 식지 않는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여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역사를 만드는 게 나의 소망"이라고 거창하게 선언하고 고향인 대구의 한 아파트에 입주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서울 연희동으로 돌아왔다. YS도 퇴임 후 한 때 상도동과 거제도 향리를 놓고 측근들이 격론을 벌인 끝에 고향 쪽을 거처로 선택했지만 청와대 경호실이 경호상 문제를 들어 틀었다고 한다.

거제도가 정말 경호상 불리했는지 아니면 경호원들이 지방에 가기 싫어서 지어낸 이유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째든 빗나갔다.

우리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들이 서울에 주저앉아 해대는 정치판 훈수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를 지난 총선에서도 목격해 왔다. YS와 DJ는 "공천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불만을 토로 했다.

국가보다는 아들이나 측근이 공천에 탈락한데 따른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패거리 정치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지방 출신 대통령 가운데 퇴임 후 역사상 처음으로 귀향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그는 "고향 김해나 부산 등에 돌아가 살겠다"고 수시로 말한 바 있다 . 그는 "숲, 생태계 복원 일을 하고 싶다. 읍·면 수준의 자치운동도 해보고 싶다"며 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을 한 것을 실천 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은 자전거를 타면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 농주를 마시면서 촌부들과 어울리는 모습, 생태계 복원을 위해 나무 심기와 하천을 가꾸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그가 거처하는 경남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평일에는 3~4천여명, 주말이면 1만여명이 찾고 있다는 것이다. 시골 농촌마을이 졸지에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일체의 노욕(老慾)을 멀리하고 고향에 돌아가 서민 중산층의 진정한 동반자로 퇴임 후 향기 나는 전직 대통령으로, 그래서 모든 국민이 진실로 존경하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처럼 현역보다 퇴임 후 더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과 집단을 풍자하는 유용한 언어로 노무현스럽다는 신종표현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상의 장난 국어사전에 올라있다.

필마단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건강한 소수의 힘을 믿는다. 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 현직보다 퇴임 후 국민의 사랑을 더 받는 전직 대통령의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한다.

김태순

서울본부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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