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문학회 사무국장

봄은

순간이다

스파크 불꽃처럼

봄이다

라고 쓰고,

느낌표를 찍는 찰나

밑점을 채 찍기도 전

종종걸음

치는 봄!

봄을 참으로 실감나게, 그리고 맛깔지게 표현한 '이종문' 시인의 봄이라는 시이다.

어찌 봄이라는 계절만 그러하랴? 우리네 인생도 뭔가 느끼고 알아간다 싶으면 벌써 종종걸음 쳐 달아나 황혼이 아니던가!

혼자 감상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으로 서두에 올렸다.

두 달 가까이 달고 산 감기 탓으로 계절을 채 만끽하기기도 전에 이미 훌쩍 달아난 봄은 벌써 새 계절을 부르고 있다.

화사하게 무심천을 수놓았던 벚 꽃잎은 수천수만 마리의 나비 떼가 되어 우리네 팍팍한 일상으로 날아와 내려앉았고, 꽃잎이 진 그 자리엔 쥐똥만한 버찌열매가 올망졸망 매달려 더욱 따가워진 햇살을 끌어 당기고 있다.

휴일이라 느긋하게 아침을 보내고 남편과 가까운 우암산엘 올랐다.

그간 이런저런 연유로 게으름을 피운 탓인지 제법 발걸음에 무게가 실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밴다.

정상에서 땀을 훔치며 썬캡으로 비춰본 얼굴은 지천명의 나이를 새삼 실감케 한다.

어느덧 눈가에 잡힌 잔주름은 더욱 깊어져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피부만큼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고 자부했었는데 언뜻언뜻 기미마저 보이니 참으로 가는 세월 앞에선 속수무책 어쩔 수 없나보다.

너무도 평범한 남자의 아내 되기를 약속한 지 올해로 이십 사년이 되었다.

누구처럼 그윽한 잔정이 있어 때때로 밀려드는 서운함을 다독여주는 것도 아니고, 무던히도 융통성 없는 고집스런 성격으로 가끔 날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게 했던가!

크게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지나칠 만큼의 우직함과 성실함을 때론 탓하며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알아간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의 평범함과 우직함이야말로 변화무쌍한 현 사회를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던 나름대로의 힘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려진다.

내가 그를 진정 왕으로 대접해야 나 또한 왕비가 되는, 지극히 평범한 이치를 이리도 멀고 긴 모퉁이를 돌아와서야 알게 되다니!!

함께 가야할 길이 얼마일지는 내 아직 모르지만 어느 순간 힘없이 손을 놓아야할 그때까지 서로의 그림자로 타박타박 남은 길을 걸어가고 싶다.

4월도 끝자락, 조금은 시끄럽게 시작된 금년 한 해도 벌써 삼분의 일이 다 지나 가고 사흘 뒤면 계절의 여왕 5월이다.

만물 중 어느 것 하나 곱지 않은 것이 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향기로운 5월!

나는 그간 나만의 아집과 이기심으로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주어 삶의 한 부분을 곱지 않은 색깔로 덧칠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새삼 반성하며 빛나는 오월의 여왕을 꿈꾸어본다.

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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