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 교수

자연 재해가 있기 전에 동물들은 미리 그 증상을 예측하고 반응한다고 한다. 한 지역에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육중한 코끼리들이 집단으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간다거나 대지진이 있기 전에 잠자리와 새들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이동해간 것이 밝혀졌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적능력과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인간이지만, 자연과의 교감의 차원에서는 동물들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것 같다.

지난 12일 중국의 쓰촨 지역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의 피해가 갈수록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현대의 발달된 과학기술로도 이번처럼 거대한 지진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누리는 인간이지만 자연의 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나약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자연재해를 예고했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나기 사흘 전 그 인근 지역에서 십만여 마리의 두꺼비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대이동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개됐다. 마을 사람들은 두꺼비들의 대이동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호소했지만, 중국 당국은 두꺼비들이 산란을 위해 이동한다며 자연재해와는 무관하다고 안심시킨 데다가 자연환경이 나아져 좋아할 일이라고까지 했다고 하니, 큰 재앙의 조짐이나 징후를 눈으로 보고도 올바로 해석하고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신기하게도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 중국 인터넷에 한 네티즌이 국내외의 여러 자료들을 조사하여 지진을 예고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우리 인간이 동물들처럼 자연의 세밀한 조짐을 직접 체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측을 통해 자연 현상을 예측할 수 있고, 현상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안타깝다.

자연현상 뿐 아니라 사회현상도 세심한 관찰과 치밀한 분석을 통해 예측하게 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못하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어지고 높이 평가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본인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을 보여준 예술가나 사상가들이 많이 있어왔다.

개화사상가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예로 들어보면, 이 책은 그가 일본, 미국, 유럽 여러 나라들의 문물을 돌아보고 소개한 기행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는 더 근본적으로 외국의 문물을 접하고 세계의 정세를 관측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당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민족에게 개화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고 촉구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화의 등급'에서 그는 국민들이 지혜롭게 개화를 이뤄가거나, 일단 시작부터 하여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화하거나 혹은 정부에서 강제로라도 국민들을 개화시키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노예의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며 조국의 걱정스러운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 개화기 사상의 여러 입장들 중에서 유길준의 사상이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문제겠지만, ‘서유견문’이 제작된 때가 1882년으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기 30여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역사적인 예견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중국 대지진 전의 두꺼비의 대이동을 보며, 자연현상이나 사회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미래에 대한 예측과 현명한 대처로 이어지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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