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한병진 대전 선병원 정신과 과장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면서 고양되고 때로는 이를 넘어서 황홀감까지도 경험하게 되지만, 사랑을 나누던 사람의 변심에 의해서든 아니면 결국 다가오는 죽음에 의해서든 사랑의 상실을 맞게 되면 좌절하고 상처 받으며 공허한 감정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은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빠져 감정의 덧없음을 탓하고 슬퍼합니다.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들은 영원한 사랑의 순수함과 아름다움, 고귀함을 보여주며 우리가 그런 사랑을 꿈꾸도록 자극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피상적이고 깊은 사색을 동반하지 않은 가치투여는 여러 가지 삶의 부작용을 산출하는 것 같습니다.

변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적은 것이요, 허무하며 심지어 쓸모없기까지 하다는 영원성의 깊이 없는 추구는, 세상 거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의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변화하는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란 에너지가 정체되지 않고 계속 흐르는 상태입니다.

에너지가 순환하지 않고 정체 된다는 것은 창조와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이겠지요. 자연의 꽃은 피어나는 생성의 과정을 겪은 후에는 시들고 땅에 떨어지는 소멸의 과정을 가야합니다. 꽃의 시듬이 일견 보기에는 화려한 꽃의 표현이 없어지는 허무한 소실로 보일 수 있으나 소멸의 과정은 결국 대지에 유기물을 전달하고 유기물은 다른 생명 속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생성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에너지는 흐르고 있고 흘러야 합니다. 즉 세상 만물과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노자 도덕경의 구절을 받아들이고 세상 만물, 세상만사가 다 변화해야 하는 것이 이치라는 것을 깊이 받아 들일 때 우리 몸과 마음의 많은 병이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분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크게 부여하는 순수한(?)마음이 강할수록 우울증의 치유도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이 변하는 것에 실망하고 영원불멸하는 것의 피상적 가치에 얼마나 집착하느냐가 우리 마음속의 에너지의 흐름을 막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정신에너지도 자연스런 흐름을 유지해야 하며, 에너지가 어딘가에서 정체되고 고이게 되어 분출되지 않으면, 정신에너지가 사용되지 못하고 그만큼 정신의 효율성은 저하되고 어느 순간 살다보면 정신적 한계와 탈진의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마음속의 에너지는 계속 흐르면서 새로운 곳에 에너지가 도달하고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면서 창조와 발전, 생동감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의식이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추구할 때, 자연의 이치인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며 이는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하게 됩니다.

사랑은 어차피 변화하는 만물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영원의 가치를 마음속의 심연에서 찾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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