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삶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져 있었다. 그의 삶의 핵심에 서서 유일하게 그 삶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셀레스트 알바레는 프루스트가 죽은 후 온갖 질문과 억측에도 대응하지 않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50년간 침묵했다. 80이 넘은 나이에야 그간 난무했던 왜곡된 기사들과 억측을 바로잡고자 셀레스트는 프루스트와 함께 나눈 10년 동안 그녀가 직접 겪은 프루스트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나의 프루스트씨’라는 회고록에 고백했다. 이 책은 불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프루스트의 무한한 자기희생과 그에 대한 셀레스트의 헌신, 그리고 이 두 보기 드문 영혼의 조화로운 만남을 전해준다.

작품을 쓰던 10년간의 프루스트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처럼 아름답고 숭고하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그는 삶의 다른 모든 유희와 쾌락을 포기하고 남은 삶을 오로지 작품에 바쳤다. 매일 오후 4시면 하루 일과를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작업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던 그는 외출을 하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오직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만 하였다. 방안에 누워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전제적인 인력을 행사했던 기인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늘 미소를 띠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작품에 쏟는 그의 헌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룩한 종교의식과 같아 존경을 넘어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유일한 두려움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었던 그가 죽기 직전 마침내 작품에 '끝'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어느 날 그는 드디어 안도하며 '이제 죽을 수 있다'고 셀레스트에게 고백한다. 사후의 영예도 이미 확신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품의 가치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도 그의 비범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또한 위대한 작가 프루스트의 숭고한 삶 곁에 숨겨진 한 여인의 작은 일상의 위대함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의 작은 심부름을 해주던 것에서 출발하여 차츰차츰 그의 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된 셀레스트는 그의 아내도 그렇다고 하녀도 아니었지만 때로는 어머니가 되고 때로는 아이가 되며 프루스트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존경으로 10년 동안 작가와 불면의 밤을 곁에서 지키며 그의 작업과 삶의 중심 깊숙이 자리 잡아 한 천재 작가가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그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한다. 아내, 애인, 어머니, 아기, 하녀 이 모두를 합쳐 놓은 듯한 그녀는 프루스트라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품었으며 기꺼이 헌신하였다.

그녀는 그러나 그 일을 귀찮아 하기는 커녕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여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새처럼 즐겁게 그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을 즐겼다.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던 그와 나눈 10년이 자신의 전 생애와 같으며 그 삶처럼 아름다운 삶은 꿈꿔볼 수 없노라고 고백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헌신해주기를 바라기는 쉬워도 내가 기꺼이 남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녀의 희생은 더욱 존귀하다.

프루스트가 작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다면, 셀레스트는 그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자기를 죽이고 자신이 하는 가치 있는 일에 더 이상은 쏟아 부을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의 혼신의 힘과 열의를 쏟는 철저함에서 두 사람의 공통된 영혼이 느껴진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 자체를 내어준 천재 예술가와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삶조차 기꺼이 희생했던 한 평범한 여인의 헌신 그 어느 것이 더 숭고하다고는 감히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