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나는 퀴즈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퀴즈를 보면서 함께 문제를 풀다가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오답을 내 놓고 무안을 당하기도 한다.결국은 최종적으로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감탄과 찬사로 입을 다문다.

우리말 겨루기 프로를 보면서도 언젠가 한번은 꼭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우리말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다.

출연자 홍성옥씨가 처음부터 눈에 뜨인건 나이 때문이었다. 초기 문제를 거의 놓치더니 속담문제부터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연륜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그렇지 생전 처음 듣는 듯한 속담도 척척 맞추는 모양새에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TV앞에 바싹 다가 앉았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로 천천히 답을 말 할 때마다 그녀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50세에는 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했으며 60이 돼서야 검정고시에 도전한 그녀. 65세의 나이에 대학 노인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노인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65세면 이제 본인이 노인복지 혜택을 받아야하는 게 아니냐는 아나운서의 말에 빙긋 웃고 만다.

마지막 문제를 맞추었을때 마치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골을 넣은 것처럼 온몸으로 환호가 일어났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필자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쉰이 넘어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했을 때 '졸업장 따서 시집 갈거냐'는 핀잔을 준 지인도 있었다. 학력의 인플레이션으로 석사 박사가 넘쳐나고 이제는 학력이 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척도가 아니라며 그 열정으로 하고 있는 일이나 잘 하라고 점잖게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배움이 타인과의 비교를 위한 소비재적 욕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배움은 인간으로 존재하려는 문화적인 욕망의 승화였다.

내 청소년기의 최대의 갈등과 고민은 진로가 단절 되었다는 것이었다. 환경에 의해 저지당한 진학의 꿈이 사는 동안 내내불쑥 불쑥 기어 올라와 돌부리처럼 나를 넘어지게 했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치열했던 시기가 지나자 존재감의 부재로 심한 몸살처럼 우울증을 앓았다.

나는 내게 금지 되었던 학업을 소망했다. 그 유년의 꿈으로 돌아가 있는 시기에 나는 그저 행복했었다. 새로움을 얻어내는 깊은 사색이 하루를 충만하게 했다.

홍성옥씨가 암치료의 고통을 이겨내고 노령연금을 받을 나이에 새로운 자격에 도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일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와 처신을 선택하고, 미지 세계의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 드는 일은 대단한 열정이다.

사람의 지식은 생산 수단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뒤 늦게 공부한다고 호들갑스러운 내게 그녀는 내 경거망동을 지그시 눌러 주었다.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고 말로 가르치니 따지더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그녀의 행동은 또 다른 희망을 안겨 주었다.

배움을 향한 지혜는 하나의 헤프닝의 모습으로 학습자의 곁에 늘 서 있다. 이번 주 우리말 겨루기에서 보여준홍성옥씨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의 기회를 갖게 해 줄 것이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가 누리는 만학의 쾌감을 공감한다. 얼마나 행복할지 알 수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 하리오'라는 말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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