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충북대 교수

객원 논설위원

나는 의사는 아니다. 가끔씩 의사에게서 듣는 충고나 조언과 설명, 혹은 약사에게서 듣는 정보는 그래도 의학적이거나 학술적인 이야기이다.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듣는 민간요법이나 이웃 아주머니들의 경험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의학적이지도 않고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때론 그 어떤 처방전보다 효과가 클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우연히 책에서 혹은 전문가에게서 들어보면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민간요법은 어찌 그리 과학적인지….스트레스 이야기가 하고 싶다.

최근 꽤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에 필자 역시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으로 잔뜩 찡그린 날들을 맞이할 때 어느 지인의 명쾌한 처방이 아직도 생생하다.

“속상해하지 말아라.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그러니까 자꾸 체하는 것이다. 왜 그런 줄 아니? 우리들 위장은 말이다 뇌에서 직접 간섭을 받는다고 하거든. 사람이 속상하면 제일 먼저 위장이 움직임을 멈춘단다.

위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혈액순환이 순조롭지 못할 테고 음식물은 위 속에서 더디게 움직이고 다시 밥을 먹으면 위는 소화하지 않은 음식물 위에 음식물이 또 쌓일 테고, 그러면 위는 아래로 자꾸만 처질 테고 사람들은 이것을 위하수라고 하거든. 속이 상하면 자꾸만 속이 더부룩해지는 게 그것 때문이야. 그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면 혈액순환이 안 되니 어디 영양공급은 잘 되겠니?”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좋은 생각하고 자꾸 웃어주라는 게 그 이유 아닐까? 의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그럴 듯한 이야기다.

스트레스라는 게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생기기 시작하여 다가오는 병이 아닌가 싶다. 예전 어느 광고문구처럼‘자원이 사람밖에 없는 나라’라는 강박관념이 한때 나를 서글프게 한 적이, 아니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한 적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강한 힘을 나타내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나약함 또한 가지고 있다.

'양파파는 노인'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이야기에서 다소 싱그러움까지 느끼는 전율에 미소를 지었다.

멕시코 시티 시장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포티모’라는 인디언 노인이 양파를 팔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이 노인의 양파를 모두 팔아주고 싶어 좌판에 내 놓은 양파를 모두 달라고 했다.

그 때 포티모라는 노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전부 다라고요? 그렇게 팔지는 않습니다." "아니 양파 팔러 나오신 거 아닌가요? 왜 다 못 파시는 건데요?"

그러자 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곳에 양파를 팔러 나왔지만 양파만 팔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난 또한 인생을 살고자 나왔습니다. 난 시장을 사랑하고요. 여기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요. 이 시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시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사랑한다오. 그런데 당신에게 이 양파를 다 팔아버리면 난 오늘 더 이상 인생을 즐길 수가 없다오"

혹시 우리는 한 가지에 얽매여 내가 즐길 수 있는 행복이나 여유를 버린 건 아닌지?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건 아닐 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일만 보고 있자니 가끔은 서글프거나 허탈한 감정으로 묶여지곤 하지 않는지….

오늘은 내가 정신없이 하고 있던 일들에게서 공짜로 부여받은 선물들이 뭐가 있는지 끄집어내어 여유롭게 즐겨야겠다. 이왕이면 차 한 잔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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