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물은 결국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리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만을 쫓아 살면 안되며,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내용은 법정 스님의 잠언집 중 일부다.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새삼 어떻게 살아가는게 행복인가를 생각하면서 접한게 이 구절이다.

오랜세월 기자생활로, 그리고 사회복지를 전공한 필자는 인간의 이기심이 인간 행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배우면서 사회주의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항상 의문을 품었다.

공산주의 추종자인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는 노동에 따라 분배를 받고 공산주의는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집단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읽은 법정 스님의 구절이 나의 오랜 의문에 명답이 되었다. 공산주의는 결국 모든 사람이 욕망에 따라 살지 않고 필요에 따라 살아야 가능한 사회인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공산주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가 필요조건은 되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한 지인으로부터 유럽인들의 행복조건 얘기를 들었다.

지역의 모 대학 교수인 이 지인의 주장을 요약해보니 나라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감사하는 것, 둘째는 남을 배려하는 것, 셋째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라 했다.나는 사이비(?) 불자지만 가끔 절을 찾아 스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한다.

한 큰스님의 말씀을 옮겨보면 사회가 발전해 물질적 풍요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 사람들 심성이 착해진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폭등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져 우리사회의 행복지수는 어느 때보다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이에는 정치인들 책임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다.

지난 정권에 이어 이번 정권역시 국민들 불신을 받는 것은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전보다 더 불행하게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 아닌가. 정부가 경제성장에 따른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소비물가를 안정시킨다는 취지에서 추진해온 갖가지 물가안정정책 결과는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사회는 가진 사람들 의식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힘든 서민층에 욕망을 버리라는 말은 사치다.

욕망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야 할 것은 가진자들 몫이다.

돈이든 명예든 권세든 가진 사름들이 사회에 대해 감사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할 때 우리사회가 변모한다.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은 능력만 가지고서는 될 수 없다.

진정한 지도자는 우선 자기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요즘의 판·검사, 교수,등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은 그들이 자격증이나 고시 등을 통해 능력만을 검증받았지 정작 그들이 갖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도덕적 훈련이나 검증 과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다.

사실 도덕이나 윤리적 자질향상은 학교나 시험등의 공식적 교육과정으로는 한계가 있다.

집에서의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성인 이후에는 주변 친구나 선배 등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요즘 용어로는‘리더십교육’이 그 한가지일 게다.

최근 대학에서 강의를 맞으며 느끼는것은 ‘진정한 교육은 전공지식 몇가지 더 가르치는 것보다 인성교육을 먼저 하나 더 시키는게 우선돼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조금 덜 똑똑하더라도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함은 모든 기성인들이 알면서도 외면하는것은 우리사회가 학력(학벌)을 모든면에서 최우선 순위로 꼽고 있기 때문일 게다.

행복만은 성적순도 부자순도 아님을 모두가 되새겨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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