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본부 취재국장

한 달 넘게 계속된 촛불시위가 마침내 폭력시위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과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신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추가협상을 통해 가까스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은 막았지만 아직도 재협상을 외치는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수석도 모두 교체하여 평균 재산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서민들은 아직도 그들이 딴 나라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막판에 통치능력을 상실해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촛불집회나 청와대에 돌격하겠다는 시위는 없었다.

민생으로 보면 1997년 외환위기 때가 더 했다. 하지만 YS에게 돌을 던지는 촛불은 없었다. TV에서 주저앉는 소는 광우병이 아니다. 광풍의 핵이었던 한 공영방송의 인간광우병 특종은 뒤늦게 오보로 판명 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광우병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보다는 대통령에게 돌을 던진다. 대통령은 왜 이렇게 몰매를 맞는가. 촛불의 정체는 쇠고기만이 아니다. 촛농에는 먹거리 불안, 뒤틀어진 진실, 반미 정서, 야당의 당리당략, 그리고 어려운 민생에 대한 분노가 다 녹아 있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일만 잘 하면 되는 양 도덕과 원칙과 상식을 간과했다.

자신이 도덕적 허점이 있으면 아랫사람도 허물이 없어야 하는데 대통령은 허물 많은 이들을 마음대로 썼다. 국민은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한번 잃은 신뢰를 다시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적쇄신을 해도 민심이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문제의 핵심이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비롯되기 때문이다.그 결과는 정책 동력의 상실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이제 정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해야 할 일도 눈치를 봐야 할 판이다.

한·미 FTA 비준, 규제혁파, 법인세 등 세제개편, 공기업 개혁, 교육혁신 등 시급한 과제는 과연 잘 추진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는 것만큼이나 힘들지 않을까 싶다.

재협상은 당장은 시원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한·미 관계에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매우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국에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상당히 양보해야만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끝장내고 우리 내키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이 대통령은 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의 과감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을 과신하는 성격 때문인지 세상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인과응보인지 지금 국민과 세상이 그를 얕보게끔 됐다.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건강과 축산업을 보호할 것임을 선언하고 수입 쇠고기와 관련한 국민건강상 문제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서약해야 한다.

그동안 시위자들은 소의 이름을 빌려 대통령에게 매서운 채찍을 가했다. 이제는 촛불에게 물을 차례다. 무엇을 원하는가. 87년 국민이 원한 시위의 끝은 민주화였고 목표는 이뤄졌다. 국민은 대통령과 5년짜리 결혼을 한 것이다. 신혼초 잘못했다고 이혼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잘못을 엄정하게 고쳐 다시 잘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정권의 잘못은 잘못이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진실은 진실이다.

정권을 공격하는 것만큼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도 문책을 해야 한다. 정권이 밉다고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된다. 국민들도 이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일을 부정적으로 보고 반대하면 혼란을 피할 수 없고 경제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또 다시 5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는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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