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나무는/ 바람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는다/ 늘 흔들리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산은/ 바람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는다/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늘/ 스스로 제 온몸을 흔드는...'

2008년 06월 02일 국방일보 ‘詩가 있는 병영’에 소개된 ‘나무와 산’이라는 시이다.

나무는 늘 흔들리면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철철이 제 온몸을 흔들어 세상을 변화시킴을 간결하고 어렵지 않은 시어로 표현한 박우현 시인의 작품이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누군가 흔들어대면 흔드는 대로, 잔가지와 나뭇잎만을 흔들어 줄 뿐, 그 어떤 외부의 유혹에도 또, 내부의 유혹에도 겁내지 않고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다.

햇볕 따가운 날에는 잎을 벌려 햇볕을 받아내고, 눈·비 내려 가슴 시린 날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어깨를 내어주듯 한껏 가지를 뻗어 눈·비를 맞으며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나이테를 키워갈 뿐이다.

산은 스치는 바람에도, 흘러가는 구름에도, 온몸을 적셔대는 소나기에도, 심지어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꿈쩍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다.

늘 그 자리에 있다가도 때가 되면 제 온몸을 흔들어 깊이 잠든 풀씨들을 일깨우고, 나무 뿌리를 채근하여 철마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한다.

갖은 유혹을 거부치 않고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이 어디 나무와 산뿐이랴.

돌아보면 산·나무·바위·물·돌…등 모든 자연이야말로 순리에 따라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절대로 요란하지 않은 삶을 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으며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함부로 흔들리지도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 아니,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제 온몸을 흔들어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은 또 어떤 것일까?쉬운 언어로, 적당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새삼 시인의 마음으로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다소 지친 일상이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 머잖아 갈바람에 알곡이 익어가는 풍요로움도 맞을 것이다. 그 풍요로움을 알알이 꺼내어 음미하면서 길고 긴 겨울밤을 노래할 날도 있으리라.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詩처럼 살 수 없는 게 현실일지라도 세상 모든 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제 삶을 이끌어가고 가꾸어 간다면 나 또한 나무와 산과 같이 늘 흔들리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늘 스스로 제 온몸을 흔드는 주체적인 삶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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