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朴濟家:1750~1805)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상업과 유통을 중시하고, 이용후생의 학문을 체계화하였으며, 현실의 개혁을 위해 중국을 배우자'는 독특한 사상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산문가, 고고한 문기가 넘치는 화가이자 서예가였다.

속기 한 점 보이지 않고, 한 자·한 획도 방심하여 쓰지 않는 엄격한 자기절제의 벽(癖)을 지녔던 그는 혼탁한 세상에서 편벽된 병을 앓는 자가 오히려 병들지 않은 사람이며,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며 도리를 지켜서 외로이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숭상하였다.

그의 산문집 '궁핍한 날의 벗'에는 그가 직접 쓴 명말 소품가들이 자기들의 독특한 삶을 그려내던 일종의 자전(自傳)인 소전이 실려 있다.

그는 소전에서 자기 고향을 신라의 옛 땅이라고 하여 자신이 옛 시대에 맞는 사람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대학'에서 이름을 취하고, 호 초정(楚亭)은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순백의 고결함을 지키는 학자의 삶'과 '박학함과 능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굴레를 쓴 채 백안시당하는 신세를 감내하는 울분'을 담아 굴원의 '이소'의 노래에 뜻을 붙여지었다.

'물소 이마', '귀가 하얗다' 등 남들이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유한 표현의 외모 묘사 하나에서도 비교를 거부하는 그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고매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현실적인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을 멀리하며, 세속적인 가치를 따르지 않으니 늘 고독하다. 학문을 깊이 탐구한 뒤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여 수개월 귀가도 하지 않고 노력한다. 빼어난 지식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그는 과거로 돌아가 옛 성현들과 대화하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몇몇 친한 청나라의 인사와 벗을 사귀며 머나먼 중국에서나 활개를 치고 다닌다.

자연을 가까이하여 '구름과 안개의 색다른 모습을 관찰하고 갖가지 새의 신기한 소리를 들으며', 거대한 산천과 천체에서부터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관찰하고 그 이치를 깨달아 알고 있다.

삶과 죽음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고 삶·죽음을 초월하는 철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몸뚱어리는 남을지라도 떠나가는 것은 정신이고, 뼈는 썩을지라도 남는 것은 마음'이라 하였으니, 인간이 죽으면 몸은 남아도 정신은 떠나버리고 역설적으로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또 그 사람의 혼이 담긴 글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는 진부한 칭찬으로 아무리 많이 글을 쓴다고 해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져버리는 법이라며 전(傳)이란 천만 명과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정화(精華:우수하고 아름다움, 또는 순수하고 아름다움, 또는 그러한 것)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평생 실천할 한 마디 말로 '절제'를 내세웠던 그는 자신의 소전에서도 고매하고 오롯한 인품과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개성을 절제된 형식 속에 담아내고 있다.

오늘날 자기소개를 보노라면 학벌·직업·집안·키·몸무게 등 외형적인 조건과 자격증·토익 점수 등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는 나머지 마치 인간이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적합한 부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외모에 관해서도 얼짱·몸짱·S라인 같은 획일적인 잣대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잊은 채 성형수술로 남을 닮아가는 데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며 남들과의 비교로 필요이상의 열등감 혹은 우월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박제가의 소전에서처럼 우리도 획일적이고 기능적인 잣대에 우리를 가두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만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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