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웅칼럼>정현웅 소설가

수년 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일이 있다. 텔아비브 어느 곳을 가니까 그곳에 아우스비치를 복원하여 제2차대전에 독일군이 유태인을 학살한 상황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았다. 해골이라든지 안경, 신발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발가벗은 유태인의 사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참혹한 현장 앞에 영어를 비롯한 몇 개국의 언어로 이런 말이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전쟁이 끝난 다음 독일은 약 5천명의 전범자를 처형했다. 전범은 시효도 없어서 얼마 전에는 팔순이 넘은 전범자를 체포해서 재판했다.

필자가 쓴 소설 마루타는 실화인데, 당시 제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한 부대장이나 군의관들, 그리고 군속 의사들은 종전이 되자 모두 일본으로 귀국했다. 국제 논리에 의하면 패망국이었던 일본으로 가봤자 전범자들은 처벌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제731부대에서 만행을 저질고 일본으로 도망간 그 누구도 전범자로 재판을 받은 일이 없다. 그 이유는 당시 점령군이었던 미군이 제731부대에서 생체실험하면서 연구한 자료를 입수하는 대신 그들을 전범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평화 질서를 책임진다고 자부하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당시 정의와 도덕성을 포기하고, 자국의 이득을 택했던 것이다.

일본은 잘못한 과거 역사의 사실을 왜 반성하지 않는가 라고 일본의 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찌에게 물은 일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반성하는 일본인이 더 많다. 나 역시 반성하고, 그래서 제731부대의 그 사실을 르포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침묵하면서 반성하는 일본인의 목소리는 묻혀 있다.>

그의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변명에 불과하기도 하다. 침묵하면서 반성하는 일본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으로 해명될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에서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과거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반성하는 일본인이 더 많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관심하거나, 역사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일본인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무관심한 태도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가해국을 용서할지언정, 그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에서 지워서는 아니된다.

/ 정현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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