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 교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부드러운 바람이나 시원한 그늘, 옥수수를 자연의 선물이라 여기고 함께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친구나 밥을 해주는 할머니,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들도 '위대한 정령'의 선물로 믿는다고 한다(이진경, '선물에 관한 명상'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 그 자체를 선물로 여기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사람에게만 답례하고 선물을 마치 대등한 교환으로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선물에 대한 인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이키루(living)'는 바로 진정한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와타나베 칸지는 시청의 시민과장으로 한 달만 더 근무하면 30년 장기근속 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대로 일을 한 적도 없으면서 늘 일에 파묻혀 같은 자리에 앉아 30년이나 '미라'처럼 지내온 그는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된 것이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자기 부서 여직원에게서 영감을 얻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데 쏟기로 마음 먹는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동네에 방치되어 있던 웅덩이를 메우고 어린이들이 뛰어놀 공원을 만들기 시작한다. 관계자들의 거절과 멸시를 무릅쓰고 집요하게 일을 추진한 결과 마침내 공원이 완성되지만 그의 공적은 부시장에게 넘어가고, 얼마 후 공원에서 죽고 만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 찾아온 마을 사람들의 회고로 와타나베의 숨겨진 공로가 다시 주목받게 된다. 늦게 도착한 한 경찰은 와타나베가 죽기 전날 밤에 눈을 맞으며 그네를 타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슴 깊이 와 닿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안정된 직장에서 수 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도 결코 삶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삶을 갈망하게 된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삶을 새롭게 살고자 마음먹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아껴 누군가를 위해 내어줌으로써 새롭게 살기를 실천했다. 카페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모든 여학생들이 일제히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계단을 올라오는 생일을 맞이한 소녀에게 불러주는 'happy birthday to you'는 이제 막 새로 시작되는 와타나베의 삶을 축하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작은 인형 하나를 만드는 동안에도 이미 전국의 아이들을 만나는 것같이 설레어하는 여직원이나 공원을 마치 자기 손자나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눈길로 대하는 와타나베처럼 자신의 삶을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고 있을 때 삶은 죽음을 이기는 힘을 발휘한다.

선물이란 베푼 만큼 다시 받고자하는 교환이 아니라,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무상으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선물은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영화 <향수>에서 오토가 '모든 선물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말한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선물에도 선물하는 자의 희생이 담겨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평범해 보이던 선물의 의미가 새삼 거룩하게 느껴진다. 내 곁을 스치는 바람과 나무, 내가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나는 어떤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들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기 전에 그리고 더 이상 내 삶이 이 세상에 머물 수 없어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기 전에 나도 그들에게 작은 즐거움과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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