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순

일요일 오전, 아침밥을 먹고 건성건성 청소를 하고는 소파에 기대 누웠다. 혼자 있을 때에 아파트 현관을 열어 놓기란 불가능 하지만 식구들이 있으면 종종 현관을 열어 놓아 바람을 맞는다.

갇혔던 바람이 일제히 몰려나가고 새 바람이 들었다 나간다. 탁자에 올려놓은 종이가 파드득거리며 바람을 따라간다. 선풍기를 끄고 나뭇잎에서 날아온 바람을 느낀다. 머리칼을 쓸며 지나가는 바람에 솔솔 잠이 왔다.

시끄러운 소리에 설핏 잠이 깼다. 남자 수영 자유형 400미터 결승전에 3분 41초 86으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다. 한국 수영이 올림픽에 도전한지 44년만의 첫 메달이 바로 금메달인 것이다. 남편과 아이와 캐스터와 해설자가 마구잡이로 소리를 치며 흥분해 있었다.



올림픽 생중계를 처음부터 본 게 아니고 시끄러운 소리에 나보다 먼저 잠이 깬 것 같다.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방송을 돌려 보았지만 더하면 더했지 상황이 모두 똑 같았다. "금메달이 눈에 보입니다. 매운 고추가 맵다는 것을 이제 한 번 보여준 거죠."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자다가 깨서 TV를 보는데도 가슴이 뭉클하는데 생생한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이가 흥분해서 말이 헛 나오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박태환, 아 금메달! 됐어요…울어도 좋아요" 그러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이 올라왔다. 몇 번을 돌려가며 다시 보는데도 여전히 목울대가 뻐근하게 목이 잠겼다. 금메달의 감격이 그들 해설자의 격앙된 목소리에 곱해져서 더 크게 느껴졌다.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쉽게 전염된다. 나는 해설자 없이 운동 경기를 본다면 그걸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 아는 운동도 없을뿐더러 흥미가 약해서 그것이 그렇게 벅찬 것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 감동은 그러니까 해설자의 감동인 셈이다. 시상식에서 흘리는 메달리스트의 뜨거운 눈물에 함께울고 승리의 순간에 포효하며 흘리는 눈물에 복 받친다. 기쁨의 순간에 흘리는 눈물이라니…. 우리는 슬플 때만 눈물이 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 눈물은 슬플 때·기쁠 때·아플 때·서러울 때·고독할 때·무서울 때 등 여러 가지 감정에서 부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면 체내는 도파민이란 호르몬을 생성하게 되어 더욱 기쁘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는데 이 도파민이 과다하게 생성이 되면 호르몬을 분해하는 작용으로 눈물샘이 자극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과 웃음은 함께 나오는 것인가 보다. 폭소를 터트리다가 눈물을 찔끔 짜거나 기쁨의 순간에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이 도파민의 작용이라는 말에 신뢰가 간다.

요즘은 눈물치료(tear therapy)가 웃음치료보다 효과적이라는 말도 있다. 가슴 속에 맺힌 슬픔과 한을 눈물에 담아 펑펑 쏟아내어 순결하게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가지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거나 감춰 둔 상처들을 완전히 끌어올린 눈물은 영혼을 정화시키고 감정을 순화시킨다.

그만큼 눈물을 통해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횡경막이 떨릴 정도로 크게 목 놓아 울게 되면 복근과 장이 운동을 시작하여 그 기능 또한 좋아진다고 한다. 자기 영혼의 밑바닥에 팽개쳐진 감정을 모두 보듬어서 오래·세게·길게 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니 승리의 순간에 벅차 오른 눈물에 박수를 보낸다.

극한의 순간을 극복한 자신에게 보내는 연민의 눈물, 참지 말고 실컷 울자. 해설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울어도 좋아요'. 이번 올림픽에 나는 몇 번이나 울게 될는지 기대해본다. 그러나 박태환 선수의 천진한 웃음 또한 더 없이 건강하고 멋지다. 응어리 없이 다함없는 표정에 진한 기쁨이 그려진다. 아름다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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