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스릴러·판타지·공포·로맨스등 비주류문학으로 취급돼온 장르문학이 점차 국내 출판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정한 방식의 서사를 가지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장르문학은무엇보다 재미와 흥미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회와 인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을받으며 정통문학의 하위문학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일부 마니아 층에머물던 장르문학 향수층은 이제 일반 대중으로 크게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국내 중·대형 출판사들도 장르문학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 환상·공포작품 시리즈 인기몰이

최근 도서출판 생각의 나무는 동·서양 대가들이 창작한 환상·공포 문학작품 등을 가려뽑아 엮은 '기담문학 고딕총서 시리즈'를 선보였다.

▲붉은 죽음의 가면
모두 20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일본 환상소설 작가 라프카디오 헌의 '괴담',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 러시아 대표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의 '오월의 밤' 등 세 편을 비롯해 대부분 동서양의 추리 환상소설로 구성됐다.

이에 앞서 도서출판 비채는 작년 6월 추리소설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한 '모중석'(가명)이라는 독자로부터 해외 스릴러에 대한 추천을 받아 번역·출간하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을 선보였다.

도서출판 웅진의 출판브랜드인 노블마인은 아예 '장르문학 전문출판사'를 표방하며 2005년 7월 만들어졌다. 작년 초부터 '뫼비우스의 서재'라는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를 비롯해 20여 종의 장르물을 선보이고 있다.

1996년 출범한 민음사 자회사인 황금가지 역시 2005년부터 스릴러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 (전86권 예정)를 펴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의 정식 계약판을 속간하고 있다.

이밖에 대교베텔스만, 랜덤하우스, 열림원, 영림카디널, 시공사, 황매 등 다수의 중대형 출판사들이 최근 2∼3년 사이 다양한 장르문학들을 쏟아내고 있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가사단
이같이 출판사들이 장르문학에 적극 투자 하고 있는 이유는 국내 장르문학 시장의 전망이 그만큼 밝기 때문이다.

2000년대 베스트셀러는 이들 해외 장르소설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출판인회의가 매주 집계해 발표하는 종합베스트셀러 2002∼2006년 집계 내용을 분석한 결과 2개월 이상 연속 1위를 차지한 '대박' 베스트셀러 10권 중 3권이 장르소설인 것으로 분석됐다.

# 지금 한국은 장르문학이 평정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21주 연속 1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14주 연속 1위,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8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가타야마 쿄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도 종합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했던 작품들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이다.

최근에는 제드 러벤펠드의 추리소설 '살인의 해석', 15년 만에 개정 출간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추리소설 '향수'가 종합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하는 등 출판시장에서 장르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신의 유전자
소수의 베스트셀러를 제외한 장르문학 작품들의 판매 부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17000부), 마이클 코디의 '신의 유전자'(전2권·2만부)처럼 적지 않은 작품들이 1만∼2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 대형서점마다 별도의 장르문학 코너를 신설해놓았을 정도"라며 "이는 장르문학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라고 설명했다.

일부 출판사들은 장르문학만을 별도로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를 별도로 운영 중이다.

랜덤하우스(http://cafe.naver.com/nhbook), 황금가지(http://cafe.naver.com/mscbook.cafe), 비채(http://cafe.naver.com/mojoongseok), 노블마인(http://cafe.naver.com/novelmine) 등에는 많게는 3천 명에 이르는 고정 독자층이 활동 중이다.

# '하위문학의 틀' 탈피 필요

그렇다면 국내 장르문학은 어떨까.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국내 장르문학은 문화산업 콘텐츠로서 활용도가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되고 있음에도 '하위문학'이라는 인식 때문에 문학이라는 논의의 틀에서 배제돼왔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장르문학 작가는 1970∼80년대 많은 추리소설을 내놓았던 김성종 씨나 1990년대 중반 1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 '퇴마록'의 이우혁 씨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정통문학과 관련한 각종 신춘문예상, 협회상 등 수십 종의 문학상이 제정돼 있지만 장르문학에 대해서는 변변한 상 하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의 경우 에드거상, 일본에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비롯해 다수의 장르문학상이 존재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다빈치 코드
황금가지의 한 편집자는 "소설은 그 자체의 이야기로서 영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위한 바탕이 되고 있으며 여가생활이 늘수록 그런 작품들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우리 장르문학이 천대받는다면 국내 장르문학시장은 해외 장르문학에 점령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측면에서 2005년 세계일보가 대중성을 가진 작품에 대해 상금 1억원을 내건 '세계문학상'을 제정한 것이라든지, 올해 조선일보가 팩션·칙릿(chick-lit)·판타지·탐정소설 등을 대상으로 1억원 고료의 '뉴웨이브 문학상'을 제정한 것 등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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