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윤도 건양대 교수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의 목표를 넘는 승전보는 온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어린 선수들이 어떤 정치인의 정치력도, 기업인의 경영능력도 해낼 수 없는 위업(偉業)을 해낸 것이다. 부모가 삶의 고통 속에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부쩍 커버린 자식을 바라보듯 우리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90년대초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 이라는 국제적 찬사를 들으며 신흥공업국 가운데 선두를 달리며 우리가 힘차게 도약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참가국 204개국 가운데 7위라는 성적은 올림픽이 단순한 운동선수들의 담금질 차원을 넘어 온국민들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IMF 사태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분열과 대립에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진 국민들에게 일종의 무기력증에서 탈피할 새로운 '불씨'를 지핀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가히 엄청나다. 더 이상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같이 세계 1위의 기술이 상당수 있다. 조선, 인터넷, 휴대폰, 반도체, LCD 모니터, MP3 기술 등 한국은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공업국으로서의 당당함을 과시하고 있다.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세계 4위의 고속전철기술과 로봇개발기술, 세계 5위의 원자력기술, 세계 6위의 자동차기술 등 상당수 세계적 수준의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이렇다할 천연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GDP 세계 10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외환보유고 세계 4위, 군사력 세계 6위를 차지하는 등 어느 측면으로 봐도 세계 110위의 국토면적을 제외하고는 한국을 '작은 나라'로 간주할 근거가 전혀 없다. 국토도 면적만 작지 4계절이 있고 바다, 산, 들, 섬이 적절히 조화된 다양성을 감안한다면 작다고 할 수 없다. 거기에 골짜기마다 전통과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그득히 배어있는 시공(時空)의 풍요로움도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매년 각국의 군사력, 외교력, 기술력, 인적자원, 자본력, 정보통신, 자연자원, 국내총생산 뷰모, 정부 통제력 등 9개 지표를 항목당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발표하는 각국 평가에서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9위에 평가된 바 있다. 국토면적에 비해볼 때 '강소국(强小國)'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스스로를 비하하고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식민지 교육 탓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가난한 나라, 작은 나라, 힘없는 나라의 국민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남에게 인색하고 혼자 밖에 모르는 나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 일부 졸부근성까지 곁들인 여행객들이 소위 못사는 나라 국민들을 깔보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어글리 코리안'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따라서 먼저 우리나라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학생들에게는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막연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 큰 나라들에 대해 맹목적인 적개심과 분노를 가질 필요도 없고, 못 사는 나라라고 깔보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는 '국격(國格)' 이 있다. 잘 살수록 동방예의지국의 본래 모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문제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두나라 모두 자신을 너무 작게 보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일본이 작은 독도에 집착하는 것이나 한국이 지나치게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는 것은 모두 21세기 일본이나 한국의 국제적 위치에서 볼 때 걸맞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국제적으로 거대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부분적으로라도 상대방의 의사와 반하게 지배한다거나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두나라가 무슨 일만 생기면 아주 쉽게 감정적 극한대립을 벌이는 것은 21세기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최근 방한한 국제분쟁 중재 전문가 아카시 야스시 전 유엔사무차장의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되지펴진 민족 자존의 불씨를 모두 합심하여 활활 타오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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