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순 서울본부 취재국장

공·사석에서 정치과 종교 이야기는 되도록 꺼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낯선 모임이나 동문회 자리에서 이 주제를 섣불리 꺼내다간 자칫 서로 얼굴을 붉히고 나아가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충고다. 그렇다 한국인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고 여러 종교에 두루 밝은 국민도 드물 것 같다. 특히 전통적인 유·불·선과 함께 이 땅의 민초들은 천주교·개신교·이술람교·기타 자생 또는 외래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신교 신자인 최초의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하지만 종교 편향 시비로 종교 간 화평을 깼다는 애기는 들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장로 대통령은 YS(김영삼)은 집권 내내 불교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1987년 대선 때 YS는 주일이라면 일요일엔 유세를 하지 않았다. 많은 불자가 외면하는 등 비기독교 표밭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 에게는 뼈저린 교훈이었다. 대선 패배 후 5년 뒤인 92년 대선 때 Y·S는 큰 스님에게 찾아가 "내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YS는 매주 일요일 아침 목사를 초청해 관저 식당에서 가족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집권 내내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불상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돌곤했다. 그러자 Y·S는 일부러 신문·TV 기자와 함께 불상을 직접 찾았다.

10년만에 다시 장로 대통령이 집권해 불교계가 단단히 화가 났다. 04년 5월 M·B는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다. 대선후보 때는 "이번 대선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초기 내각에서 종교적 코드 상당 부분 작용했다. 시중에서는 M·B가 다녔던 소망교회 인맥을 빗댄 소망 대망(大望 )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개신교 목사 신분인 청와대 비서관이 촛불시위대를 사탄의 무리에 빗대기도 했다. 개신교 장로인 청와대 경호실 고위관계자가 "모든 정부 부처의 복음화가 내 꿈"이라고 했다. 경찰청장이 초대형 교회가 주최하는 경찰복음화 대성회 광고·포스터에 등장해 전국 경찰서에 달렸다.

국토행양부가 만든 수도권 대중교통 정보 사이트에서 사찰이 빠지더니 똑같은 일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만든 온라인 지도에서도 되풀이됐다. 나아가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을 무례(無禮)하게 검문해 불심을 화나게 했다. 이로 인해 지난달 27일에는 스님과 불교신자 20만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정부 규탄집회를 가졌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MB나 정부가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은 이미 몇 차례 종교차별 의도가 없다는 뜻을 밝혔고 모든공무원들에게 종교 편향 방지 교육을 시키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정부가 눈앞의 위기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해 '립 서비스'만 거듭할 뿐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좀처럼 불교계의 분노가 가라않지 않고 있다.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직접 사과와 당사자인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요구를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명박 대통령이 9일 불교계에 두 차례나 사과를 했다. 늦었지만 국민통합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잘한 일이다.

하지만 불교계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불교계에서는어 청장 파면 등 나머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유감이란 애매모호한 표현도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직접 잘못은 없지만 종교편향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나와 내 형제만을 아닌 이웃을 위한 기도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기도일 것이다. 불교계에서도 삼독의 성냄을 경계하라는 석가의 말씀을 따라 조금 더 자제했으면 한다. 세상은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 있는지를 다 안다. 불교계도 분명한 의사표시를 한 만큼 정부가 종교적 중립을 실천하는지 지켜보면서 대자대비 정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장기간 계속되는 종교편향 시비는 백해무익한 국력낭비다. 이제 종교편향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은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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