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논설위원

도심지엔 광장이 가정집엔 거실이란 인간 소통공간이 있다. 도시나 가정이나 커뮤니케이션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사회는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광장과 거실이란 공간이 퇴조해 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끼리끼리 한 공간에 모여 의사교환을 나누던 대화방에서 벗어나 개인별로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쏟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이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상상을 초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개별 생각과 의견이 모아져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여론까지 주도한다. 익명성을 지닌 인터넷이 온갖 의견과 생각을 집결시키고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가 거의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에다 디지털카메라까지 휴대하고 다니며 순간 순간을 포착, 갖가지 소식과 사건을 인터넷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유통시킨다.

결국 광장과 거실이란 소통 공간의 효율성은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인터넷 덕으로 소통의 양(量)은 증가하고, 시간·공간까지 초월하고 있다. 이젠 대표를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간접민주주의 제도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소통의 혁명적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철히 따저보면 인터넷은 사이버 광장일 뿐이다. 직접 모여 얼굴 표정을 보면서 나누는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의 원활과 거리낌 없는 방법에도 불구, 현장과 체감 등이 빠져있음을 느낀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교감과 소통에서 늘 부족함을 느꼈던 직접 만남과 소통의 결핍을 보완한 형태가 바로 ‘촛불집회’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부터 서울 광화문 등지에서 시발돼 전국으로 확산된 ‘소고기 촛불집회’를 각계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궁금하다. 하나의 사회·문화적 혁명으로까지 말하는 이 현상을 놓고‘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이라 진단하는 견해도, 직접적인 민주주의 서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같은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인구 밀도가 좁은 데다 인터넷 이용자가 많기 때문,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도가 높기 때문, 보수와 진보의 충돌 때문 등으로 다양하게 풀이하고 있다.

소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앞으로 빈번하게 도심지 광장을 덮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중요한 이슈나 큰 문제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 행정기관에서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할 때마다 촛불이 켜지지 않을까 심려되는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겠다며 촛불을 치켜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발명, 인쇄매체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타고난 정보유전인자를 지닌 민족 답게 인터넷과 광장을 결부시켜 새로운 소통 방법인 촛불집회까지 창출해 낸 것이다.

그동안 이 촛불집회가 무리한 시위나 항의 등 부정적 함성도 토해 냈지만 앞으로 새롭고 긍정적인 소통장치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끌어낸 붉은 악마의 응원집회처럼 긍정적으로 작동, 신바람을 내게 된다면 각 지역세와 국력은 활기를 띠겠지만, 국정과 민생을 마비시키고 대치 상태가 지속되는 등의 부정적 언행으로 일관한다면 적잖은 퇴보만이 양산될 뿐이다. 다시말해 인터넷이 불을 지른 촛불집회가 민족의 단합과 결속력,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축제성 신바람으로 타올라 긍정과 부흥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 돼야 하다는 얘기다.

우선 집회 참석자들 모두는 광화문이든 대전역이든, 청주 성안길이든 어디에서 집회를 개최하든지 건전한 소통장치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에 정해진 절차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이기주의적 주장만으로 원칙이 무너진다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뿐이 없고 그 소통문화는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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