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순 서울본부 취재국장 |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닉 모건 박사는 "연설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명연설가하면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이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십시오" 이 말은 고교생이라면 영어시간에 한 번 외웠던 문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첫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했다. "비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라"는 메시지로 "건실한 기업이 일시적 자금 경색으로 흑자 도산하지 않도록 금융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설의 핵심메시지는 "우리 경제가 어렵지만 IMF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라디오 방송이 나간 뒤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자평을 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동안 줄곧 국민과 시장에 전파해 온 내용이다.
메시지 부재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철학과 방향을 말해주는 핵심 컨셉트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책임전가이자 정부의 무대책을 입증한 노변한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노당은 "반성은 생략된 채 감성에만 호소한 알맹이 없는 신변잡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진보신당은 "변명과 훈시로 가득 찬 노변괴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국민이 정부의 위기극복 노력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떨치고 정부를 믿을 수 있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와 흡사한 1933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도 국난 타개를 위해 노변담화를 했다. 마치 난로가에서 이웃들에게 얘기하듯 국정을 설명 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의 폭풍이 수천개의 은행과 기업을 무너뜨린 상황에 취임했다. 친구 여러분이란 말로 시작한 연설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설 다음날부터 50만통의 전보와 편지가 백악관으로 답지됐다. 은행이 폐쇄되기 직전 돈을 빼갔던 사람들도 연설 다음 날 다시 은행에 맡기는 작은 기적도 나타났다. 대공황을 극복하는데 라디오 연설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했다.
루스벨트의 노변담화를 벤치마킹 한 게 이번 라디오 연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대통령의 첫 연설은 시쿤둥한 반응이다. 무엇보다 루스벨트 시대의 라디오와 현대의 라디오는 그 의미와 무게 차이가 있다.
루스벨트가 노변담화를 하던 시절에는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해야 대중연설과 라디오, 신문 정도 밖에 없었다. 대공황 상황에서 휴일에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는 것은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영상과 인터넷을 비롯해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시대다. 일방적인 메시지만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반감을 사고 상처를 줄 수 있다. 국민에 대한 배려와 진솔함이 배어있다고 느껴져야 한다. 국민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정부에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희망을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이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쌍방향 소통시대에 인터넷을 죽이면서 라디오에서 일방통행하려는 발상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즉 야당에게 반론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들과의 소통도 잘 되고 관심도 높아진 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녹화보다는 생방송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 연설의 성패여부는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전락하느냐, 여론을 수렴하는 창구로 발전시키느냐에 달렸다.
대통령의 말이 구체적인 행동을 담은 메시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파낭비만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