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교수

21세기가 시작된 뒤에도 20세기 삶의 문제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우리 삶의 시간이란 하나의 단위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곧 우리 삶의 질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러한 한계 앞에서라도 21세기 문학의 미래 그리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일들은 먼저 한국문학이 처해 있던 상황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한계와 문제점을 살피고, 그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20세기 한국문학의 전개 양상은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과 화해의 변증법으로 살필 수 있다. 문학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전면으로 부각되고 초역사성이나 자율성은 약화되면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 시대와의 긴장과 이완을 따라서 대결하고 화해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의 우리 문학은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 왔다. 먼저 20세기초의 일제강점기를 통한 민족감정의 분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8·15 해방 이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6·25 한국전쟁과 4·19 학생의거를 비롯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촉발되는 역사변혁의 에너지가 20세기 후반까지를 강하게 지배해왔다.

그 가운데서 문학의 사회성과 역사성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성과를 얻었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정신의 높이와 영혼의 깊이를 담아내는 데에서는 일정 부분 한계를 노출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인 신동엽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불온한 시인으로 취급되었고, 따라서 아직도 여전히 그러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의식세계에는 한국적 상황에 철저한 이해의 바탕을 두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려는 '우주지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동엽은 우주 순환의 보편적 토대 속에서 인류의 역사와 사회 변화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한반도의 문제와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동심원적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크게 보면 신동엽은 인류의 역사를 낙원의 상실과 낙원 회복 의지로 파악하고 있다. 그 안에서 그는 대지와 인간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시에서 대지는 인간의 원초적 고향으로 여성과 동일시된다. 인간은 대지에 발 딛고 노동으로 살아감으로써 그의 시는 대지의 생명력이 인간의 그것과 친화와 교감을 이룸으로써 삶의 온전성과 총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생명을 지향하였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원시성의 추구는 여기서 기인한다. 그의 시는 대지의 여성상징을 바탕으로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적 생명세계를 지향한다. 이것이 그의 생명사상의 토대이다.

이러한 점은 21세기에서도 여전히 그 의미를 발휘한다. 신동엽은 개인의 문제로부터 민족의 문제 그리고 인류의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의 시세계는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우주적 사고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는 민족의 역사, 현실의 문제를 포괄하는 우주적 근원과 본질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통해서 세계를 크고도 넓게 인식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의 한국 역사와 현실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민족 현실의 특수성 위에 굳게 서 있으면서도 인류의 보편성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신동엽은 문학의 현실 대응의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였다.

그 결과 그의 시는 현실 문제를 예리하게 드러내면서도,인류 구원의 문제까지를 아울러 보여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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