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도, 김희선도, 문근영도 아직 최진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 요정'은 많았지만 그 생명력이나 파급력이 그 만큼 길고 질기며 강한 스타는 없었다. 그런 그가 나이 마흔에 다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새 연기 인생을 개척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세월에 순응하는 '아줌마 배우'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야 나, 최진실"이라며 대중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원조 '국민 요정'에서 '맹순이'를 거쳐, '줌마렐라(아줌마 신데렐라를 뜻하는 신조어)' 신드롬의 주인공까지. 세월의 파고를 유연히 뛰어넘으며 독보적인 마력을 과시하는 최진실을 화창한 봄날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68년생으로 만 40세. 두 자녀의 엄마인 최진실은 좀 심한(?) 차림이었다. 경쾌한 쇼트팬츠와 티셔츠를 입은 최진실은 가녀리면서도 군살 하나 없는 탱탱한 몸매였고 얼굴 역시 20대가 부럽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선보인 또 한 벌의 의상 역시 탑 형식의 초미니 원피스. 최진실의 파워가 새삼 느껴졌다.

20년 전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고 말하는 cf로 전국민을 감전시켰던 그가 걸어온 길은 다른 난다긴다하는 스타의 그것과도 궤적을 달리한다. 그가 받은 사랑은 단순히 '인기'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질투'와 '별은 내 가슴에'로 트렌디 드라마의 장을 화려하게 열어젖힌 이 '국민 요정'은 떠들썩한 이혼 과정을 거치며 추락하는가 싶었지만, '장미빛 인생'과 '나쁜여자 착한여자'를 통해 마디마디 아픈, 절절한 인생을 대변하며 보란듯이 부활했다.

이 대목에서 최진실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 던지는 듯 했다. 부활은 했지만 나이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여느 중견 배우들과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최진실이었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세월에 순응하는 줄 알았던 옛 신데렐라의 화려한 귀환이자, 영리한 배우 최진실이 마흔의 나이에 '줌마렐라'로 새롭게 태어나게했다.

--피로를 좀 풀었나.

▲드라마 끝난 지 열흘 정도 됐으니 어느 정도 풀렸다. 하지만 두 아이의 운동회에 차례로 다녀오는 등 나름대로 바빴다. 드라마 때문에 큰 애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못 갔는데 운동회에는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하 '내마스')을 통해 주부에게 희망과 꿈을 줬다. 하지만 본인은 주부가 아니라 20대 아가씨로 보이니 좀 얄밉다.

▲유전적인 부분에서는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많이 먹는데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다. 식성도 한 몫 한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다섯 끼를 챙겨먹지만 반찬은 거의 안 먹고 밥만 먹는 식이다. 김치를 너무 좋아해 김치 반찬만 다섯가지로 챙긴다. 군것질은 하지 않는다.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미빛 인생' 끝날 때 손현주 씨한테 자전거를 선물받았다. 그때부터 타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다. 3년 됐는데 '장미빛 인생' 때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의 내 몸매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슬림해지고 탄탄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르막 길을 달릴 때는 아랫배에 힘을 주기 때문에 출산 후 처졌던 뱃살도 회복됐다. 원래 실내에 갇혀서 운동하는 것은 딱 질색이다. 자전거를 타면 사람 구경도 하고 폐활량도 늘어나서 좋은데 무엇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석양에 타는 느낌 정말 좋다. 길게는 안 탄다. 20~30분 코스를 타는데 그래도 엄청난 운동량이다. 비가 와도, 황사가 와도 탄다.(웃음) 한번은 아들을 데리고 타러 나갔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넌 멋진 엄마를 둬 좋겠다'고 하시더라. 즐기면서 타고 있다.

--'내마스'로 정준호 씨도 큰 인기다. 정준호 씨를 드라마에 추천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받았나.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가방을 선물받았다. 그리고 이영자 씨와 나를 하와이로 여행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정준호는 하와이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또 '내마스'가 6월에 일본에서 방송되는데 정준호 씨가 '호사마'로 등극하면 일본에도 데려가준다고 했다.(웃음) 나 역시 정준호 씨한테 고맙다. 정준호 씨는 내게 젊음을 안겨줬고 코미디는 호흡이 포인트임을 알려줬다.

--'내마스'를 통해 뭘 보여주고 싶었나.

▲나이 마흔에도 트렌디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0~20대는 지금의 날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코미디 연기를 하면 20대까지는 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대를 주인공으로 한 트렌디 드라마는 많지만 그 이후에는 없지 않나.

물론 30~40대가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려면 가정, 자식 등 몇 단계의 난관을 거쳐야겠지만 세상이 달라진 만큼 나이 대가 높은 트렌디 드라마가 나올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또 30~40대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드라마는 30~40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열어두고 젊음을 되찾게 한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 홍선희에 빙의가 돼 송재빈(정준호 분)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변진섭 씨가 부른 주제가의 '사랑이 올까요, 또다시 올까요'라는 가사도 드라마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최진실에게 사랑이 다시 올 것이라 믿나.

▲믿는다. 지금 이 나이에 더 이상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길 수 있다'고 많이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애들이 잘 안 넘어온다.(웃음) 7살짜리 아들이 '사랑은 해도 뽀뽀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 아들한테는 무려 12명의 여자친구가 있다 한다.

--나이를 즐기나, 아니면 20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누가 나이를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의치 않고 산다. 늙어간다고 슬프거나 젊음이 부럽거나 한 것은 아니다. 20대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별로 없다. 나만큼 20대를 화끈하게 살았으면 됐지, 30대도 그렇고…. 지금은 40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해야한다.

--극중에서는 중학생 딸을 둔 엄마의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실제로도 엄마이니까. 출산 경험이 없었다면 딸을 쳐다보는 눈빛이 건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내 딸처럼 생각하고 연기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보일 수밖에. 뭐든지 가짜는 티가 난다. 초등학교 때 일 나간 엄마 대신 빨래판으로 빨래를 직접 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있으니 '내마스'에서 빨래판으로 빨래를 하는 연기에서 '자세'가 나오는 것이다. 극중 요리하는 장면은 거의 내가 직접 했다. 대개는 소품팀에서 준비해온 요리를 갖고 요리하는 척을 하는데 난 그렇게 못하겠더라.

--한 시대를 풍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진실처럼 이렇게 오래 정상에 있긴 힘들다. 스스로의 영향력을 느끼나.
▲그동안 대한민국을 몇 번 들었다 놓았다 한 것 같다.(웃음) 움직이기만 하면 일이 크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기분파이기도 하고 철이 너무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배우라는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이다.

난 복이 너무 많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상에도 서봤고 온갖 것을 다 누려봤기 때문에 정말 이제 여한이 없다. 내가 언제까지 주연을 하겠는가. 이제 차차 조연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건방진 말 같지만 '제2의 최진실'이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도 싶다.

--어떤 후배에게 그런 싹이 보이나.

▲이효리라는 친구가 한번 출연했던 드라마가 잘 안된 후로 연기를 안 하고 있던데 그 친구가 두 번, 세 번 망할 것을 생각하고 연기에 도전해보길 권하고 싶다. 내 생각에는 '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 재목이다. 요즘 친구들은 왜 작품을 많이 안 하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송혜교 등…. 많이 해야하고 특히 연속극을 많이 해봐야 한다. 선배들의 연기를 많이 봐야 는다. 진짜 연기자가 되고 싶으면 60~70회 하는 연속극에 출연해야한다. 선배들과 대본 연습을 같이 하면서 연마를 해야 한다.

--연예계에서 막강하고 끈끈한 인맥을 자랑한다. '내마스'에 이영자 씨가 우정출연한 것도 그렇고.

▲막강한 것은 모르겠고 끈끈한 것은 맞다.(웃음) 내게는 가장 큰 재산이다. 생각만 해도 배부르다. 연예계는 친구를 갖기 참 힘든 동네다. 각자 마음 속에 자신들만의 신이 있기 때문에 질투도 심하다. 우린 그런 것을 초월해서 친구가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질투와 오해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서로 좋아도 좋다는 말 하지 않는 사이다. 그저 눈빛만 봐도 서로 안다.

--법원에 두 자녀의 성씨 변경을 신청했다. 여권 신장의 선봉에 선 느낌이다.

▲난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여권 운동을 왜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아이들 성을 '조'씨에서 '최'씨로 바꾸겠다는 것은) 나로서는 작은 돌멩이를 던졌을 뿐인데 파장이 큰 것 같은 느낌이다. 난 그저 아이들과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묶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재혼해서 살고 있고, 내 삶이 공인으로서 세상에 드러나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내 성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를 믿고 따라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희들의 인생을 살면서 엄마가 자랑스럽고 존경할만 하다면 따라오라는 뜻이다. 내 독단적인 생각에서 결정한 게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를 데리고 충분히 물어보고 한 행동이다. 아이들의 성을 바꾸는게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다고 낳아준 아버지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거창한 뜻이 있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흔들림 없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유명인인 엄마를 뒀기 때문에 앞으로 감내해야 할 것에 대해 내성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파장이 훨씬 커 놀랐다. 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고 그렇다면 내가 선봉에 서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에 맞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이뤄져야 하는게 아닌가. 하지만 누군가와 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

▲지금 3분의 2 정도까지 왔다. 조만간 또 법원에 가야 한다. '내마스'를 촬영하면서도 필요한 절차를 꼬박꼬박 밟아 나갔다. 사실 포기하고픈 순간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성씨 변경을 신청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모순 아닌가.

재혼을 이유로 아이들 성을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유 불충분으로 기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안 되어도 난 또 신청을 할 것이다. 엄마가 아니면 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긴 세월이 걸려도 계속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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