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ㆍ뇌졸중 발생에 시너지효과

당뇨병 환자는 고혈압을 같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고혈압 환자 중에 혈당이 높은 사람이 많다.

두 질환 다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다는 속설이 있지만 치료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질환을 다루는 전문과목도 당뇨병은 내분비내과, 고혈압은 순환기내과다.

그러나 근래에 당뇨병과 고혈압은 서로 '통하는' 사이라는 증거가 속속 제시되고 있다. 최근 국내 의료진이 주도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뇨병과 혈관 이상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심장병과 뇌졸중 등 심혈관계 사고의 위험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당뇨병도 혈관 이상에서 시작 = 당뇨병이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인슐린이 혈관 내피세포를 자극하면 일산화질소(no)를 분비해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당뇨병은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인슐린에 내성이 생긴 상태(인슐린 내성)로 일산화질소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해 혈관이 수축되면 혈압이 올라가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혈관기능에 이상이 있으면 인슐린 내성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인슐린 내성이 생기면 혈중 포도당이 세포로 흡수되지 않아 혈당이 올라간다. 혈관기능 이상은 혈관확장이 잘 안되거나, 혈전이 생기거나, 염증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가천의대 길병원 심장내과 고광곤 교수는 "과거에는 당뇨병을 단순히 췌장 세포가 인슐린을 잘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인슐인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질병으로 인식하고 치료했지만 최근에는 혈관 문제가 인슐린 내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방향으로 시각이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혈관장애와 인슐린 내성은 일종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악화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뇌혈관계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몇 배로 높인다"고 강조했다.


◇ 혈관기능 개선약, 심근경색.뇌졸중 발생 줄여 = 고혈압과 당뇨병이 서로 통하는 사이라는 것은 약물치료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혈관기능을 개선하는 약물을 쓰면 당뇨병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인슐린 내성을 줄여주는 당뇨병약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보인다는 것.

혈관장애가 인슐린 내성을 유도하고, 거꾸로 인슐린 내성이 혈관장애를 촉진한다는 내용이 설득력을 얻음에 따라 두 질환의 치료방법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뇨병 치료를 위해 원래 고혈압에 쓰던 약물이 활용될 수도 있다.

다양한 혈관장애 개선약물을 함께 쓰면 하나만 사용할 때보다 심근경색, 뇌졸중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 국제 학계, 비상한 관심 = 혈관 건강과 인슐린 내성에 대한 연구는 국내 의료진이 주도하고 있다. 고광근 교수와 미국 국립보건원(nih) 내분비내과 수석과장 마이클 콴(quon) 박사 등은 'nejm', '서큘레이션' 같은 세계 주요 학술지에 이같은 연구결과를 지난 5년 동안 수차례 게재한 바 있다.

길병원과 하버드의대 브리검 부인병원, nih가 26일 공동 개최하는 '제2차 가천 동맥경화, 고혈압 및 당뇨 국제심포지엄'에는 오패릴(oparil) 미국 고혈압학회 회장과 nih 소속 콴 박사, 하버드의대 리아오(liao) 교수 등 순환기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한 석학 11명이 참석, 혈관 질환을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고광근 교수는 "최근 학계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별개의 질환으로 보지 않고 한 질환이 다른 한 질환을 유발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치명적인 합병증 위험을 몇 배나 증가시키는 것으로 본다"며 "혈관 장애가 각종 성인병에 미치는 영향이 좀 더 명확히 규명되면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법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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