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웅 칼럼> 소설가

먼저,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대지진에 의한 재난에 대해 삼가 애도를 표하며 이 글을 쓴다.

필자는 외국 중에 중국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만약 전생이 있었다면 필자의 전생이 중국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약 20년 전 중국과 한국간에 국교가 있기 전부터 홍콩으로 해서 중국을 방문했다. 그 이후 자주 중국을 왕래했는데, 관광을 위해서라기보다 대부분 취재목적으로 방문했다.

첫 번째는 마루타의 소설을 쓰기 위해 제731부대의 현장인 하얼빈을 방문하면서 북경과 중국 동북성 일대를 돌았다. 두 번째는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에 관련된 소설을 쓰기 위해 돌았으며, 세 번째는 1400년 전에 당나라에 끌려갔던 백제 유민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서안을 비롯한 서남부를 돌았고, 다섯 번째는 광복군이 활동했던 서주와 중경 일대의 중부권을 돌았고, 여섯 번째는 고구려에 관련한 소설을 쓰려고 집안을 비롯한 고구려 유적지를 살펴보았다.

그밖에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중국을 횡단한 일도 있다. 이렇듯 수십 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필자가 느낀 감정은 그곳에 가기만 하면 왠지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누구한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아마 당신 전생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20년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면서 필자가 느낀 경이감은 갈 때마다 바뀌는 놀라운 성장속도였다.

처음에 북경 공항을 방문했을 때 그 곳이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조그만 규모에 북경시로 가는 길에도 고속도로는커녕, 포장상태가 나빠서 차가 덜컥거렸던 기억이다.

북경에 높은 건물은 별로 없었고, 호텔의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외국인이 세워 경영한다는 두세 개의 호텔을 제외하고 서비스란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아시안게임을 하면서 북경은 달라졌고, 이제 올림픽을 하면서 다시 도약하는 것이다. 다른 대도시, 특히 상해는 이제 서울보다 더 화려하고 번잡한 도시로 변모했다. 한국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연길도 놀랍게 발전하였고 동시에 그들의 의식세계도 달라졌다. 이렇게 발전하는 저력의 원동력은 광활한 국토와 인적자원인 인구의 풍부함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고대로부터 문명의 발상지로 인정하듯이 발전된 문명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근세에 청나라의 몰락과 공산주의 정권의 집정으로 발전이 느려졌을 뿐이다.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을 보면서 필자는 한 가지 우려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인권의 소홀함이다.

워낙 인구가 많으니까 좀 죽거나 유린되어도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관점을 가진다면 오산이다.

얼마 전에 필자가 광개토대왕에 관련한 소설을 쓰려고 집안현을 방문해서 박물관을 관람한 일이 있는데, 안내자가 이런 설명을 했다.

이곳의 박물관장과 직원들은 대부분 조선족인데, 얼마 전에 관장과 그 부하 직원 십여 명이 모두 총살되었다고 한다.

왜 죽였는가 묻자, 그들이 박물관에 있는 그림과 유물 일부를 빼돌려 한국인 중개상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유물을 팔았다고 해서 관장과 관계 직원을 총살해 버리는 국법을 가진 중국이 과히 중국식 발상이기는 하지만,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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