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손현준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내가 미생물학을 처음 배우던 25년 전에는 슬로우바이러스(slow virus)라는 이상한 감염병원체가 있었다.

이름이 그렇게 붙은 이유는 바이러스일것이라 예상했고, 감염 후 발병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매우 느린 성질 때문이었다.

요즘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쿠루, 스크래피,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 슬로우바이러스 질환이라는 챕터에 묶여 있었는데 지금도 어떤 질병분류표에는 그용어가 남아있기도 하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이 사료에 들어가서 소에게 광우병을 일으켰고 그 소를 먹은 사람에게서 오랜 잠복기를 거쳐 인간광우병이 진행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하였다는 사실과 그 병원체는 바이러스가 아닌 변형 프리온 임이 이제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단백질은 원래의 구불구불하던 모양을 판모양으로 접어서 매우 안정된 분자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끓이거나 고압고온멸 균기로도 파괴되지 않는다.

또한 그 스스로가 주형(鑄型)이 되어 주변의 정상 단백질을 판모양으로 접히게 하고 긴 사슬로 이어 붙인다. 이리하여 뇌가 스폰지 모양으로 변한다.

풀을 먹어야 하는 반추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이 프리온의 순환은 계속된다고 의심해야 한다.

미국측 주장을 다 믿는다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분명히 있고, 지난 4월에는 20대 젊은 여자가 cjd로 사망했다.

부검결과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산발성(sporadic)cjd가 60대 이상의 고령이 아닌 젊은 사람에게 발병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에 쇠고기로부터 전달된 원인 을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산발성인지 전달된 변형 프리온에 의한 cjd인지를 명확히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1950년대까지 죽은 사람의 뇌를 먹는 장례 습관을 가졌던 파푸아 뉴기니의 어떤 원주민 종족은 인구의 5%정도로 쿠루병이 흔하게 발병했었다고 한다.

변형프리온이 포함된 쇠고기가 유통되면 정확한 확률은 모르지만 누군가는 10년~30년 후에 병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발병전 잠복 기간이 너무나 길기때문에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확률이라는 것이 진실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노인성 치매 발병률의 한가지 원인으로 이 프리온이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20개월 이하의 위험물질이 제거된 미국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성가실 정도로 복잡하고 전문적인 신경계통의 병리학을 모두가 알게 되었을까.

우리 국민의 과학적 관심과 수준이 높아서라면 매우 기쁜 일이겠으나 사실은 양심적인 전문가들에게 없는 결정권이 영혼을 팽개친 일부 고위 공무원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묵은 숙박료인지 카트라이딩 비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시가 수없이 친구 라고 불러주게 한 이유로 검역주권을 넘겼다고 알고 있기에 많은 시민이 분노하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재협상 하자고. 촛불든 시민의 분노를 핑계 삼아서 검역주권을 다시 찾아오기 바란다.

라면 스프 뿐 아니라 쇠고기와 관련된 모든 식재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광우병이 발생한 후에 통상마찰을 불사하더라도 수입중단을 감행하겠다는 무지막지한 용기가 초래할 부작용보다 지금 재협상을 하는 것이 낫다.

통상마찰로 피해를 볼 상공인들이나 15년~30년 후에 누군가 인간광우병에 걸렸음이 밝혀졌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책임지겠다던 사람이 그때 살아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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