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순칼럼>서울본부 취재국장

김태순 서울본부 취재국장
1995년 4월 13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 기자간담회에서 폭탄 발언을 한 게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그는 "내가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 하겠다"면서"기업은 2류, 관료와 행정조직이 3류 라면 정치는 4류"라고 편하게 말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시절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와 정치권이 경천동지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그이 발언에 동의하는 국민이 지금도 다수일 것이다.
정치는 민의를 수렴해 정책을 만들고, 각계각층 국민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거나 해소하는 행위이다.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을 부여하고 1인당 연간 4억원이 넘는 세금을 쓰는 것도 바로 그런 일을 해달라는 뜻에서다.
지금 야당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18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됐지만 개점휴업 상태다.
국회의원이 버젓이 위법을 저지르면서 장외투쟁을 하고 있다. 그러려면 의원 배지를 차라리 반납하면 될 일 아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만 해도 시급한 현안이다.
유가와 물가 인상에 따른 민생 대책도, 경제 살리기에 필요한 입법도 해야 한다.
쇠고기 촛불, 시위가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당연히 야당의 역할이 중요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야당의 존재감은 느끼기 어렵다. 장관 해임안이 부결되고 쇠고기 장관 고시가 허용된 것은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야당의 무기력 때문이다.
촛불 집회에서 야당의 지도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 하듯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민주당 지도부 예방 자리에서 "내가 1963년부터 원내에 있었지만 장외투쟁에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충언을 했다.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국회 등원을 접고 장외 투쟁에 나서자 전직 대통령의 조언을 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자신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충고마저 일축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쇠고기 재협상 선언과 한나라당의 가축전염예방법 개정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결코 국회에 등원하지 않겠다"며 촛불 집회에 가담하고 있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 민주당은 장외투쟁을민주노동당은 단식 농성을 자유선진당은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다 지난 10일 등원을 결정 했다.
선진국의 의회는 휴가기간을 제외하곤 연중무휴라 할 정도로 거의 매일 의회를 열고 있다. 우리 국회는 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직장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정기국회 100일은 마지못해 회기를 채우지만 임시국회를 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쩌다 임시국회를 여는 경우에는 쓸데없는 싸움하느라 회기의 대부분을 공전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기업이 국회처럼운영한다면 며칠 안에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언제나 이런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제헌국회 때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수많은 법률들을 3독회를 거치면서 만들어냈다. 3대 국회의 경우 247일까지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시켜 가면서 국회를 상설화해 놓은 때도 있었고, 대통령에 대한 경고결의안을 제출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유신독재 시절에는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국회는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 정치가 낙후한 것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세계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때문인지 모른다.
세계와 경쟁하려면 창의력을 가지고 온 힘을 기울이어야 하건만 국내정치의 경우 청와대 눈치보기,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단지 실력의해 당락이 결정되지 않는 탓이 아닌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구태의연한 정략에 사로잡혀 있을 셈인가. 물론 한나라당도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국회 정상 가동의 1차적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다. 식물국회, 개점휴업국회는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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