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순칼럼>서울본부 취재국장

김태순 서울본부 취재국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5월초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한 달 보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판단과 일처리는 안이하고 미숙했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적인 선거를 거쳐 출범한지 겨우 1백일을 지난 민간정부에 대해 정권퇴진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보야 하나 시위참가자들이 한밤중 서울 도심의 태평로와 세종로 10차선을 점거 해 불법 가두시위를 벌이는 것이 당연시 된 지 오래다. 이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소음공해와 교통두절 등으로 생활에 큰 불편은 물론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문화제 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반정부 구호가 난무하는 정치집회로 점차 변질돼 가고 있다.
또 시간이 갈수록 과격성을 더해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위대는 경찰이 설치한 버스 차단벽을 무너뜨리고 버스를 끌어내는가 하면 버스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버스 지붕에 올라타는 등 격렬한 행동을 했다.
시위대가청와대 진격 투쟁을 강행하려 하자 끝내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원이 부상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한 여대생이 군홧발에 밟히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로인해 가해 경찰이 구속되고 상관 2명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우선 참가자들이 폴리스 라인을 지키고 그 안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했으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폴리스 라인을 침범해 불법시위를 하면 가차 없이 곤봉세례를 가하거나 물대포 등으로 강력히 대응하지만 우리 공권력은 무기력하다.
시위대와 사소한 몸 싸움만 있어도 방송과 인터넷에서는 연일 과잉진압 폭력경찰이라며 몰아세운다.
이런 탓인지 현장에서 만나는 경찰제복은 무기력해 보인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데 '법질서' '공권력' 운운하는 것 자체가 먼 나라 애기다.
경찰은 시위 진압은 커녕 제 자신을 지키기도 급급해 전경버스로 주요 요소에 바리케이드을 쳤던 것이다.
시위 현장에 가 보면 경찰 공권력은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격이 떨어진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 '매맞는 경찰'이라른 말이 예사일 만큼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이 도전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권력을 바로 세워야 하며 경찰의 정당한 공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엄히 처벌하라고 촉구하곤 한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내지 고무줄 양형을 적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공권력이 무기력 한 지 오래다.
경찰은 헌법 및 집시법 등에 따라 개인과 단체의 집회 시위도 보호하고 동시에 공공의 안녕질서도 유지해야 한다.
이 점에서 모든 국민은 경찰의 공권력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일본에서 지난 1960년대 후반 도교대 야스다 강당이 점거된사건이 있었다.
이후 과격 운동권이 외면받기 시작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일본사회는 난동의 주역들이 평생 사회적 주류가 될 수 없도록 봉쇄했다.
이제 한국도 범범행위에 대해 엄하게 처벌하고 나아가 사회의 지도층이 준법을 지키는데 솔선해야 한다.
물론 경찰은 공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잉대응을 자제함은 물론이다.
시위대의 인권만이 아니라 전·의경의 인권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이다.
시위 진압하는 전·의경도 우리의 자식이자 국민이 아닌가. 모든 것을 경찰 탓으로 돌려서야 안 된다.
시위대도 폴리스라인을 존중해야만 된다. 그리고 지정된 장소와 시간내에서 시위를 해야 한다. 그게 법치사회이고 성숙한 사회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가 못하는가의 잣대는 법치(法治)가 바로 서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권력이 바로 서야 사회도 국가도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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