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웅 칼럼>소설가

정현웅ㆍ소설가

지난 노무현 정권 때 무슨 한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문화 예술 단체 전반에 걸쳐 그 책임자들이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차지했다.

만약 이 말에 이의를 달면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진보성향의 예술단체들이 보수 단체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입었다.

정확히 보면 김대중 정권 때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지만, 노무현 정권 때 꽃을 피운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데올르기는 본질적인 예술활동과는 거리가 먼 이념적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 예술활동을 함에 있어 파워를 형성하고, 기득권을 갖게 된다. 그 이념의 패권에 따라서 갈리지게 된다.

옛날처럼 첨예한 좌·우 대립은 없지만,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정권의 주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 향배가 달라진다. 이제 십년이란 세월을 넘어서 보수라고 표방한 정권이 들어섰다.

이 보수 정권이 옛날 하던 식으로 얼렁뚱땅 넘으려고 했던 이번 쇠고기 협상으로 해서 큰코를 다치고 있지만, 아마도 십년 전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국민들은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어도 정부 권력이 하는 일에 대해 어쩔 수 없어 했을 것이다. 지금의 국민 의식이 그만큼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시민들이 보여준 언론 조중동 불매운동과 그 언론에 광고를 내는 기업체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언론사 조중동은 어떤 의미로 정부 권력조차 어떻게 하지 못할 만큼 권력을 지닌 성역이었다. 그래서 그 언론이 왜곡하거나, 조작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고, 그 언론이 의도하는 대로 여론이 달라지는 현상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들 언론이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 정부 입장을 편드는 눈치가 보이자 촛불집회의 주동이 되었던 시민들이 새로운 네티즌 운동을 벌이게 된다.

모금을 해서 한겨례나 경향 등에 광고를 내주기도 하였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알기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터넷 사이트라든지, 개인 미디어업체에게 까지 광고를 지원하며 사기를 북돋았다.

광고는 언론사들의 생명줄이다. 시민들이 조중동 광고를 원초적으로 봉쇄하려고 하자, 언론사들이 점차 쇠고기 파동에 객관성을 가지려고 하였고, 촛불 집회를 두둔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의 여론이 거대 언론을 이겼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젠 이 네티즌 문화라고 불리는 촛불 집회 집단도 하나의 집단으로서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역학관계라고 한다.

앞으로 촛불 집회가 항상 정당성과 타당성을 가져야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권력에 기생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는 집단이 생길 수 있다.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패턴은 자발적인 선동에 있다. 만약 그 시민운동에 대해서 그것을 주도하는 몇 사람의 힘이나, 어느 특수한 집단에 의해서 이용되면 그 순수성을 잃을 뿐더러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시민운동이나 촛불집회같은 것이 순수성을 지니려면, 정치적인 색깔을 벗어야 하며, 보수 정권의 정책을 반대하는 행동대로서의 진보집단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야당이 잘못해도, 진보 집단이 오류를 범해도 촛불들고 항의하는 문화가 진정한 촛불집회 시민운동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거대 언론을 잠재우는 또 하나의 절대 권력의 가치를 가지며, 촛불집회가 순수성을 유지하는 국민운동이고, 민주주의의 영원한 꽃이 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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