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경화ㆍ한국교원대 교수ㆍ수학

"축구공을 관찰해봅시다. 여러분이 수학자라면 어떤 의문을 품을까요?"라고 물으니 "왜 하필이면 그 모양일까?", "완전 동그랗지는 않구나! 그런데 왜 공이라 부를까?", "발로 차면 잘 나갈 것 같다! 왜 그럴까?" 등등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웃음소리와 함께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질문하는 학생들은 모두 남학생들이다.
조용히 앉아있는 여학생들을 굳이 하나씩 눈 인사하면서 아무리 격려해도 영 묵묵부답이다. "수학자라고해서 처음부터 완벽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떤 종류의 질문이건 해보세요"라고 또 호소하니, "삼각형은 없네요. 왜 그래요?", "가죽 말고 도화지로 만들어도 공이 될까요?", "배구공하고는 달라요. 농구공하고도 다르네요. 왜 그래요?" 등등 여전히 남학생들만 신나게 질문한다.

왜 남학생들만 질문할까? 수학자 폴리아가 말했듯이 질문하는 것은 이해하는 증거이고 발전할 수 있다는 징표인데 이상하게 질문하는 여학생을 찾기 어렵다.

그러고 보니 영화 뷰티플마인드를 봐도, 굿윌헌팅을 봐도 수학을 천재적으로 잘 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이다.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남자가 수학을 더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자가 수학을 더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물으니 어리둥절 당황할 줄 알았는데 대부분 단호하게 남자를 선택한다.

2006년 교육통계연보에 의하면, 전국의 과학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의 약 26%만이 여학생이다.

까다로운 선발 과정으로 유명한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성별 수혜자 자료를 보아도 여학생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기존의 과학 고등학교보다 파격적인 정부지원으로 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과학영재학교의 여학생 비율은 15%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

제수학올림피아드나 국제물리올림피아드와 같은 대회에서 입상하는 여학생 비율은 그 보다 더 낮다.

여학생 수학영재, 과학영재가 적은 이유로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학과 과학이 남성의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여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수학과 과학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학부모들이 힘들고 거친 이공계보다는 부드럽고 덜 힘들어 보이는 인문사회분야를 선택하도록 한다.

수학과 과학 관련 사교육 경험이 여학생의 경우 남학생보다 현저하게 낮다. 그리고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수학자나 여성과학자, 곧 역할모델이 부족하다.

학부모의 지원을 덜 받으니 수학과 과학 학습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공계 분야에 진출할 계획이 없으니 적당한 수준에서 학습하고, 성공한 수학자 또는 과학자를 찾기 어려우니 수학과 과학에 대한 성취동기 또한 낮다.

이러한 이유로 영재교육 수혜를 덜 받으니 이공계 분야의 우수한 여성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역할모델이 부족하니 소극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등등 영락없이 악순환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악순환의 고리는 항상 끊기 어렵다.

영재아들을 대상으로 수업할 때마다 만나는 다수의 남학생들과 몇몇 여학생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스꽝스런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내뱉는 남학생들과 꽤 괜찮은 질문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시시 웃기만 하는 여학생들이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한 여성성에 대한 압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답할 수 없는 다소 황당한 질문도 하고 아니다싶으면 바로 더 생각해보겠다고 기회를 갖는 여학생들이 많은 문화에서 여학생 수학, 과학 영재가 많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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