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동길ㆍ前연세대교수ㆍ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청암, 석정 두 분은 경주 태생이지만 고향에 머물며 부모 밑에서 순조롭게 자라지는 못했다.살림이 어려워져 10살도 못된 어린 나이에 형은 행상인을 따라 청주로 가서 돈을 벌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보호조약을 강요하던 1905년 청암, 석정은 `김원근 상회`를 창업하였고 이들은 곡물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마땅히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해서 이들 형제는 남달리 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청암은 조치원에 중학교 하나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지만 일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청암은 청년회장까지 사임하고 동생은 원산 북창동에 `김영근 상점`을 창건하는 등 사업을 더욱 늘려나가 1924년에 대성보통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대성학원이라는 아름다운 금자탑으로 이 땅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등불이 된 것이다. 20년 가까이 수업료를 전혀 받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석정선생을만난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경험담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있는 거대한 교육기관 대성학원을 총지휘하던 선생의 생활은 좁은 단칸방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검소함이었다.

입었던 옷으로 말하면 가난한 시골의 농부차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의 두 눈에는 빛이 있었고 말에는 힘이 있었고, 태도는 의연하고 떳떳했다. 신의를 존중하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어 후배와 동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어째서 청암, 석정 두 분이 온 국민의 사표가 될 수 있었는가 하면 남을 속인 적이 없고, 남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나는 한평생 남에게 말로 하지 못할 짓을 한 적은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그런 사람만이 교사가 될 수 있고 스승이 될 수 있다.

두 분은 남들에게 "정직하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정직하게 살았고, 남들에게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 사랑을 실천에 옮겼다.

두 분은 한평생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였지만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꾸준하게 하고 간 진정한 교사였고 이 겨레 전체의 스승이었다.
공자 사상의 중심은 `인`(仁)이었다.

그의 이념을 이어받은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양혜왕이 "선생께서 이 먼 길을 오셨으니 이 나라에 이익이 될 만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그 질문에"왕께서는 어찌 이로운가 불리한가 하는 따위의 말씀을 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 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정신이 원근, 영근 두 분 스승의 교육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쨌던 위대한 정신을 지녔던 두 분과 같은 땅에서 태어나 같은 공기를 호흡할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영광이 아닌가.

문제는 우리가 이 두 분의 정신을 본받아 후진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말로만 해서 교육이 되지 않는다.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에 옮겨야만 교육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김원근, 김영근 두 분의 생애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 믿는다.


※ 이 기고는 5월22일 청주대학교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청주대학교 설립자 육영사상 조명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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