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주 문학박사 극동대 외래교수

이상주 문학박사 극동대 외래교수

어느덧 장마와 무더위의 계절이 왔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은 실내에서 빗소리 들으며 운치있게 더위를 식힐 수 있다.

그러나 장마가 일시 멈추고 햇볕이 쨍쨍 내리 쬐게 되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달려가서 맑고 차가운 물에 뛰어 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충북 지방엔 제천부터 영동까지 소백산맥 기슭엔 어디를 가도 웬 만한 계곡이 형성돼있다. 따라서 여름에 쓸 만한 계곡이 참으로 많다.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일원에 '용하구곡(用夏九曲)'이 있다. 몇 해 전 여름에 텔레비전 프로에서 이 계곡을 소개한 적이 있다.

사회자는 '더운 여름에 쓸 만한 계곡'이라서 '용하계곡'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그곳에 사는 분들도 그 같이 설명하는 분이 있었다. 하(夏)는 '여름'이 아니라 '중국의 하(夏)나라'를 가리킨다. 따라서 '중국 하(夏)나라의 문물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조선말 일제강점시대에 위정척사(衛正斥邪:올바른 것을 세우고 사악한 물리쳐야 한다는 뜻)존화양이(尊華攘夷:중국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사상을 가지고, 항일의병활동을 선도하던 박세화(朴世和)등 유학자들이, 정통문화라고 여기는 중국의 문명을 숭상하고, 오랑캐인 일본을 물리쳐야한다 의지를 견강히 하기 위해, 집회하고 강론하던 곳이다. 본래의 의미와 달리 여름이란 계절과 연련지어 기발하게 설명한 재치가 대단하다.

이 기회에 '여름에 쓸 만한 충북의 구곡(九曲)'을 살펴보자. 충북지방에는 속리산계(俗離山系) 남한강인 달천강 중·상류 100여리 사이에 9개의 구곡이 설정돼있다. 이런 경우는 전국에서 이 곳이 유일하다.

정부가 2001년을 '한국방문의 해'와 '지역문화의 해'로 선포한 바, 필자는 그 취지에 부응하고자, 이를 '구곡문화관광특구(九曲文化觀光特區)'라 명명했다.

이는 '산수관광(山水觀光)'과 '문화관광(文化觀光)'을 병행할 수 있는 문화관광권으로, 구곡(九曲)의 산수를 유람하며 구곡에 대해 읊은 구곡시(九曲詩)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관광구역을 말한다.

하류로부터 그 명칭을 들어본다. 괴산군에 고산구곡·갈은구곡·연하구곡·쌍계구곡·선유구곡·화양구곡이 있다. 그리고 청원군에 서계구곡·옥화구곡이 있다.

또 보은군에 낙우당구곡이 있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그간 단행본 1책, 논문 20여 편을 집필했다. 그래서 '구곡전문가'라 불리기도 한다. 인터넷 네이버 검색창에 '구곡시'를 치면 관련 논문 제목이 떠오른다. 필자가 확인한 충북의 구곡은 총 22개이다.

'구곡특구'에 가면 아름다운 산수와 한시 그리고 암각자(巖刻字)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갈은구곡' 제9곡 '선국암(仙局?)'에 새겨놓은 한시이다.

번역해 본다. "옥녀봉(玉女峯)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가건만, 바둑은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다음날 다시금 생각이 나서 찾아와 보니, 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

신선의 세계가 아니고야 어찌 바둑알이 꽃이 된단 말인가!작은 폭포를 바라보며 그늘 아래서 옥녀와 정담을 나누면 더위도 잊고 선경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이미 당신은 신선이다.

유난히 무더운 이 여름, 여름에 쓸 만한 '구곡문화관광특구'에서 구곡문화의 진수를 만끽하며 '문화피서'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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