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로 사형집행을 하는 것은 사형을 '윤리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것일뿐"(헬렌 프리진 수녀)
"자식이 사형수라면 부모와 다른 자식들까지도 사형수가 되는 것이 우리 사회"(조성애 수녀)

한국에서 사형이 마지막으로 이뤄진 것은 1997년 말이다.

따라서 올해 말까지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제 엠네스티 기준으로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된다.

이런 시기에 즈음해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운동에 헌신하며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프리진·조성애 수녀가 23일 만나 사형 제도의 비인간성과 폐지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 한국서 강연회 펼친 代母들

프리진 수녀는 미국에서 20년 동안 사형제 폐지운동을 이끄는 인물로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원작자이자 영화 속에 등장하는 헬렌 수녀의 실제 주인공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비롯해 40여 명의 사형수들과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며 20년 동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조성애 수녀 역시 작년 화제를 모은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한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의 실제 모델이다.

이날 오후 서울 로얄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프리진 수녀는 "범죄자를 사형수로 만들어 오랜 시간 사형집행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며 "사형제도는 어떤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문제"라고 따갑게 지적했다.

이어 "사형집행은 지난 98년(99명)을 기점으로 매년 줄어들어 작년 53명까지 줄어들었다"며 미국에서도 사형집행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약물을 사용한 미국 사형집행제도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 끔찍한 모방살인일 뿐

프리진 수녀는 "약물을 통한 사형집행은 잔인한 장면을 숨김으로써 마치 사형수가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처럼 위장해 오히려 사형을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사형집행을 통해 풀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 인가가 큰 문제"라며 "특히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연극,영화 등 예술적 자료들을 통해 사형제 폐지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애 수녀도 "사람을 죽인 흉악범도 5년, 10년을 교도소에서 지내면 일부는 실제로 교화를 받는다"면서 "그들을 다시 사형시키는 것은 살인범들과 똑같이 '모방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韓이 美보다 먼저 폐지

특히 "사회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사형수들의 가족들을 볼 때면 오히려 피해자 가족들 보다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며 "하루 속히 종신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의 생명도 우리와 똑같다. 그들이 우리만큼 가정환경이 좋고 경제적 여건이 좋았다면 사형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들을 선한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다행히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미국보다 먼저 사형제 폐지국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법률이 바꾸지 않는 이상 언제든 사형제도는 정치인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국내 최고령 주간신문인 가톨릭신문(사장 이창영 신부) 창간 80주년을 맞아 이날 한국을 찾은 프리진 수녀는 24∼25일 각각 대전 탄방동 성당과 부산 남천 성당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제로 강연회를 한 뒤 26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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